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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님 실수하셨는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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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명 : 폭처법위반(공동상해). 죄명은 무시무시하지만 시작은 미미했다. 집에서 큰 반려견을 키우는 청년이 있었는데, 동네 할머니들이 개 주인에게 "그렇게 크고 무서운 개를 키우면 어떡하냐"고 훈계한 것이 발단이다. 결국 할머니들 중 2분이 '시비 중 사람을 밀어서 개 주인에게 전치 2주의 상해를 입게 하였다'는 혐의로 법정에 섰다. 나는 할머니들의 변호인이 되었다.


9회 공판기일에 마침내 결심이 되었다. 우리는 승리를 예감했다. 그런데 선고기일에 가보니, 전날 검사가 죄명을 '상해'에서 '모욕'으로 바꾼 ‘공소장변경허가신청서’를 제출했다는 것이다. “욕하면서 밀어 다치게 한 걸 욕한 걸로 바꿨으니 피고인에게 유리한 처분”이라고 했다. 나는 뭔가 이상하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이의했다. 재판장은 일단 공소장변경은 허가하되, 한 기일만 속행할테니 변호인은 주장을 정리하라고 하셨다.

할머니들은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나. 안 때렸는데 때렸다고 해서 겨우 방어를 했더니 이젠 욕했다고 말을 바꾼다. 재판을 처음부터 다시 받으라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성토했다. 머리가 아팠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형사소송법 교과서부터 폈다. 책에 길이 있었다. 마침내 ‘공소장변경허가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해서 "이 건 공소장변경은 위법하므로 이에 대한 허가결정을 취소하여 주시기 바라옵니다"라고 끝을 맺은 장문의 서면을 제출했다. 학생이 선생님은 완벽할 거라 생각하는 것처럼 나에게도 법관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신(神)처럼 완벽해 보이는 재판장의 실수를 내가 찾아냈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정말로 재판장은 공소장변경허가결정을 취소했고, 공판조서에 기재되었다. 즐거운 마음에 “재판장님 실수하셨는데예”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바로 결심되어 무죄판결을 손에 쥘 줄 알았는데 재판은 계속되었다. 불안감과 피로감이 쌓여갔다. 재판장에게 싫은 소리를 듣거나 불이익을 받은 것도 없었지만, 뭐랄까 법정의 분위기가 싸늘했다. 반년이 더 지나 무죄판결이 선고되었을 때 마음엔 이제는 끝났다는 안도감뿐이었다.

변호인의 보상은 내가 경기에서 이겨 받는 환호가 아니라, 힘든 사람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통로가 되는 것이리라. 서늘했던 그 법정을 떠올리며 그려본다. 지금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박종명 변호사 (법무법인 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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