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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법왜곡죄’ 도입 논의에 대한 우려

지난 달 28일 ‘법왜곡죄’를 신설하는 형법 개정안이 의원입법안으로 국회에 제출되었다. 직권남용죄에 관한 형법 제123조에 이어 123조의2에서 법왜곡죄를 규정하겠다는 것인데, 그 내용은 ‘법관이나 검사가 재판 또는 수사 중인 사건의 처리에 있어서 법을 왜곡하여 당사자 일방을 유리 또는 불리하게 만든 때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는 것이다. 용어 자체가 생소하게 들리지만 형법학계에서는 1990년대에 독일의 입법례가 소개되었고, 2000년대 초 이후에는 법조비리가 문제될 때마다 언론매체에서도 심심찮게 다루었다.

법안의 내용을 보니 독일형법을 거의 그대로 차용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독일형법 제339조는 범죄의 주체를 ‘법관 기타 공무원 또는 중재인’으로 하고 있다. 헌법재판관, 중재인, 경찰관, 검찰수사관, 법원직원, 집행관, 세무공무원, 특허심판관 등도 법률업무를 수행할 뿐 아니라 특정인에게 이익 또는 불이익을 주려는 악의를 가지고 자의적으로 권한을 행사하거나 직무를 유기할 경우 그 처벌의 필요성은 판·검사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 입법안에서 유독 판·검사만 처벌의 대상으로 하고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

‘법을 왜곡한다’는 것도 너무나 추상적이고 불명확·부정확한 개념이어서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될 소지가 크다. 법왜곡은 국회가 잘못된 입법을 하여 법질서가 혼란스러워진 상황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검사가 정치적 동기나 개인적 공명심에서 구속사유가 불충분한 피의자에 대하여 구속영장을 신청한다거나 법관이 그러한 영장을 발부하는 것은 법을 위반하는 것이지 왜곡하는 것이 아니다. 독일형법은 ‘법률업무를 수행하거나 결정을 함에 있어 일방 당사자에게 이익을 주거나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 사법의 정도(正道)를 일탈한 행위(perverting the course of justice)’라고 규정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 중 독일이 특별히 이러한 형법규정을 두게 된 배경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히틀러가 통치하던 독일 제3제국은 인종차별, 대량학살, 강제낙태 등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는데, 히틀러의 정책에 비협조적인 법관이나 검사 등은 퇴출되었지만 다른 법조인들은 그의 정책을 수행하는 데 협조하거나 앞장선 결과 많은 범죄들이 합법적으로 자행되었다. 한편 동독에서는 베를린장벽이 세워진 1960년대 이후 30년간 자유를 찾아 서독으로 탈출하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국경지역에서 총격에 피살되고, 반체제 인사들이 투옥을 당했다. 이러한 범죄들 상당수가 동독법에 따라 사법공무원에 의하여 합법적으로 저질러졌다. 독일은 통일 후 동독정부의 국가적 범죄행위에 대하여 중대한 책임이 있는 사법공무원에 대하여 위 형법규정을 적용하여 형사처벌을 하였다.

중국, 러시아, 북한 등도 유사한 형법규정을 두고 있다고 하지만, 이들 국가에서는 이 규정이 법관의 독립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으니 오히려 법왜곡죄의 역기능을 보여주는 실례라고 할 수 있다. 독일과는 달리 고소·고발이 난무하는 우리의 법률문화도 고려해야 한다. 재판결과에 불만을 품은 많은 당사자들이 법관을 법왜곡죄로 고발할 것이 예상되는데, 법관이 재판에 관하여 행정부에 속한 수사기관에서 수사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법관의 독립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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