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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만남 그리고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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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간 아들은 면회를 가면 볼 수 있지만, 휴가를 나오면 볼 수가 없다. 이번 휴가에서도 집에 온 지 삼일째 되는 날 아침에야 간신히 얼굴을 본 아들에게 “아들, 좀 너무 하는 것 아냐?” 했더니 “아빠, 바빠. 아빠는 면회나 많이 와줘. 흐흐”라는 답변이 돌아 온다. 살짝 서운한 마음이 드는 한편에 어찌 보면 아들 답변에 인생사 만남에 관한 법칙이 녹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꼭 이해타산은 아니고 사랑, 존경, 그리움 등 감성적인 요소가 더 많다고 하여도 만남이라는 것은 만나는 사람 상호간의 수요 곡선이 교차하거나 접점이 있어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에서 선생님은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인연의 소중함을 다음과 같은 대사로 설명한다. “이 지구상 어느 한 곳에 요만한 바늘 하나를 놓고, 저 하늘 꼭대기에서 밀씨를 딱 하나 떨어뜨리는 거야. 그 밀씨가 나풀나풀 떨어져서 그 바늘 위에 꽂힐 확률, 지금 너의 앞에, 옆에 있는 친구들도 다 그렇게 엄청난 확률로 만난 거고, 또 너하고도 그렇게 만난 거다. 그걸 인연이라고 부르는 거다.” 인연의 확률이 그렇게 엄청난 확률인데, 그 인연을 다시 만남으로 이어갈 확률은 정말 대단한 확률인 것 같다.

법조인들은 흔히 소송은 공격 방어 방법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라 하여 소송을 살아있는 생물에 비유하곤 한다. 범죄 수사 역시 여러 요소에 따라 흐름이 바뀌면서 성패의 결과가 극적으로 갈릴 수 있기에 또한 생물에 비유되곤 한다. 한편으로는, 가깝지 않으면 원수가 될 일이 없다는 말처럼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인연을 시작으로 만남을 거쳐 시간이 지날수록 관계의 정도나 방향이 바뀐다. 어쩌면 소송, 범죄 수사보다도 더 살아있는 생물같은 것이 사람 관계인 것 같고, 대부분의 소송이나 범죄는 그런 관계가 극적으로 그 정도나 방향이 바뀌면서 발생하는 것 같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사막의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서로를 길들인 시간만큼 서로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 모두 어린 왕자가 되어 사막의 여우 말에 귀 기울이면 좋겠다. 물론 그러면 소송과 범죄가 대폭 줄어 우리 법조인들이 난관에 처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기우가 들기는 하지만 말이다.


김상곤 변호사 (법무법인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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