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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개와 고양이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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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 인간은 나를 먹여주고, 지켜주고, 사랑해 준다. 인간은 신이 분명하다. 

고양이 : 인간은 나를 먹여주고, 지켜주고, 사랑해 준다. 인간에게 나는 신이 분명하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 ‘고양이’ 중에서 -


민사재판을 하다보면 별다른 객관적 증거 없이 당사자 주장만 있는 애매한 사건을 종종 보게 된다. 소송가액도 크지 않고 어려운 법리도 없는 사건이지만 증거는 턱없이 부족한데 의례히 당사자들은 완벽하게 다른 주장을 하기 마련이라 재판부로서는 판단을 내리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특히 양측 모두 자신의 기억이나 경험이 절대적으로 진실하다는 확신 하에 상대방에 대한 불신과 배신의 감정이 커진 상황이라 가까운 관계라도 조정조차 쉽지 않다. 당연히 패소하는 경우 진실을 제대로 가려내지 못한 재판부에 대한 불신 역시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의 기억은 처음부터 기억 주체의 주관적 기준이나 관점에 따라 선별적으로 저장되고, 기존 경험과의 관련 여부에 지대한 영향을 받으며, 뇌에 존재하는 수천 개의 시냅스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다가, 어떤 자극에 의해 맥락 없이 흩어져 있던 수천 개의 조각들이 다분히 주관적인 재조합 과정을 거쳐 회상되는 것인지라, 반증이 없는 한 진실하다고 추정할 수 있을 뿐 역사적으로 실재하는 진실을 담보할 수는 없다. 그래서 양측 모두 각자 진실을 말하는 사건에 있어서도 재판의 결론은 일방의 기억만을 진실한 것으로 채택하거나 또는 완전히 새로운 진실을 결론(예컨대, 인간도 고양이도 아닌 별도의 신이 존재한다는 결론) 내리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재판부로서는 양측 당사자들의 서로 다른 기억이나 경험이 각자의 입장에서 어떠한 관점을 가지고 어떻게 선별되어 재조합되었는지를 심도 있게 탐구한 후 가능한 공통된 역사적 사실을 꼼꼼하게 추출해 내야하는 동시에 그 과정에 판사의 주관적 관점이나 편견, 경험 등이 과도하게 개입되지는 않았는지도 경계하여야만 한다. 역시 재판은 어느 하나 결코 쉽게 볼 수 없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오! 수정’을 보면, 사랑에 빠진 남녀가 기억하는 과거가 서로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주기 위해 동일한 상황을 남녀의 기억에 따라 달리 구성한 후 반복하는 장면이 나온다. 판사들에게도 당사자들의 서로 다른 기억을 재생하여 보여주는 장치가 하나쯤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은혜 판사 (서울동부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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