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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비동의 간음죄’ 신설보다 시급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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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업무상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죄’(형법 제303조) 1심 무죄판결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비동의 간음죄 신설논란이 뜨겁다. 야권의 여성의원들이 토론회를 열고 No Means No Rule을 적용한 ‘비동의 간음죄’도입을 주장했다. 상대방의 분명한 거부의사에 반하여 성관계를 갖는 행위를 처벌하여 현행 성폭력 관련 입법의 빈틈을 메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별도로 ‘업무상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죄’의 법정형을 최대 징역 7년형으로 강화한 법률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16일 공포된다.


또 원포인트 법 개정이다. 성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늘 그래왔다. 아동이나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범죄가 터질 때마다, 그리고 판결이 선고될 때마다 낮은 형량에 분노한 국민들의 요구에 밀려 새로운 구성요건을 신설하고 법정형을 상향하거나 가중처벌규정을 두는 방식이 반복되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신상공개, 전자발찌 착용, 화학적 거세 등 새로운 처벌이 등장했다. 처벌백화점이라 불릴 정도다. 성범죄에 관한 한 강성화 형사정책과 무관용 원칙이 고수되고 있다. 형법은 그대로 두고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등 특별법을 개정했다. 국회의원들이 의정활동 실적에 급급하여 경쟁적으로 한 두 조문을 고치거나 신설하는 단발성 입법발의를 선호하다보니 체계도 통일성도 없는 복잡하게 짜깁기한 법률이 된 것이다. 미투(#Me Too) 운동 이후 성폭력 고발과 처벌에 관련된 법안이 쏟아졌고, 20대 국회 개원 이후 성폭력 처벌 및 피해지원에 관련된 법안은 140여건에 이른다고 한다. 여러 법률에 산재해 있는 성범죄 구성요건이 유사·중복되어 있고 법정형의 불균형도 발견된다. 위계·위력과 폭행·협박, 간음과 추행을 구별하지 않고 동일한 법정형을 두고 있는 규정들이 그 예다. 하도 복잡하다보니 2008년에 발생한 ‘조두순 사건’에서 검찰이 처벌 법규를 잘못 적용했었고 법원조차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을 잘못 적용한 사건이 수십 건에 이른다고 한다. 법률가도 헷갈릴 정도니 수범자인 일반 국민에게는 난맥상으로 다가온다. 형법학자인 나도 도표로 정리해놔야 겨우 분간이 갈 정도다.

새로운 범죄구성요건을 신설하거나 법정형을 높이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성범죄에 관한 형사법체계를 정비하는 것이다. 법무부는 2016년에 형법과 특별법에 흩어져 있는 성범죄 처벌규정이 제 각각이어서 국민은 물론 법률전문가조차 어떤 법률을 적용해야 할지 알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 제도 개선을 검토하기로 했지만 별 성과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추진해야 한다. 특별법에 산재해 있는 성범죄 처벌규정을 형법에 통합·편입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행위유형(비동의, 위계·위력, 폭행·협박, 흉기휴대 등과 이에 의한 간음 및 추행)과 피해자별(성인, 아동·청소년, 13세 미만, 장애인 등)로 기본구성요건과 가중·감경 구성요건 형식으로 체계화해야 한다. 과잉범죄화, 과잉형벌화, 법정형 불균형, 책임원칙 위배 등도 정리해야 한다. ‘강간과 추행의 죄’라는 장의 명칭도 ‘성적 자기결정의 자유에 관한 죄’로 바꾸어 보호법익을 분명히 밝혔으면 좋겠다.


하태훈 교수 (고려대 로스쿨)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