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法臺에서

배려와 관용이 있는 사회

147179.jpg

지적장애인(자폐아)의 아들을 둔 부장판사의 소원이 자기 아들보다 하루만 더 사는 것이란다. 애련(哀憐)의 마음을 금치 못한다. 이번 추석 연휴에 ‘채비’라는 영화를 보았다. 지적장애를 가진 아들을 둔 엄마가 암에 걸려 죽기 전에 그 아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처절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그린 영화다. 감동적으로 보았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둔 부모들의 심정이 어떠한지 절절히 그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고 장애인 자녀를 둘 수 있다. 내가 원해서 장애를 가진 자녀를 낳은 것이 아닌데, 그 부모들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렵다.


사회는 어떠한가. 이들의 삶의 무게를 덜어 주지는 못할망정 그들에게 편견과 차별이라는 무게를 더 올려 주고 있는 것이 우리의 자화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구치소의 과밀수용으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건에서 국가는 자신의 잘못이 없다고 변명하면서 “예산이 없을 뿐 아니라 예산이 배정되더라도 무엇보다 관련 주민들과의 조정이 쉽지 않아 교정시설의 신설이나 증축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교정시설만이 아니다. 장애아를 위한 시설을 짓는 것도 마찬가지다. 최근 서울 강서구에 장애 아이들을 위한 특수학교를 짓는데 인근 주민들이 반대하여 착공하지 못하자 장애 아이들을 둔 부모들이 주민들 앞에 무릎 꿇고 하소연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 헌법 제8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고 천명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은 차별이 없는 존경과 배려로 서로를 관용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관용은 나에게 편안한 사람들과 편안한 삶의 방식을 공유하는 공간을 내어 주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불편한 사람들과 불편한 삶의 방식을 함께 할 공간을 내어 주는 것이다.

장애아들도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고 이를 사회적으로 보장받아야 한다. 우리의 조그만 배려와 관용만 있어도 장애인과 그들을 둔 부모들의 삶의 무게를 많이 줄여 줄 수 있을 것이다.

강영호 원로법관 (서울중앙지법)
카카오톡
  • 카카오톡
  • 관련 법조인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