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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로스쿨시대의 법학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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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있다 보니 새 학기가 시작되면 출판사나 저자로부터 신간서적을 가끔씩 받게 되고 또 직접 사서 보기도 한다. 


로스쿨시대의 법학교과서를 생각하면 참 우울하다. 어떻게 하면 생존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 25개 대학에만 로스쿨이 생기고 남은 법학과들은 학과변경과 학생정원 감축 등으로 이제 대학에서 법학도를 찾기 힘들 정도이다. 그러니 교과서를 읽을 독자층이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매년 수많은 판례가 쏟아지고 법령의 개정도 잦아서 교과서는 출간한 지 1년이 지나면 독자들이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은 짧은 기간에 시험에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요약된 책을 선호하는 바람에 수험서와의 경쟁에서 버텨내기가 힘겹다. 더구나 교수들은 연구업적의 부담이 커서 훨씬 시간을 적게 투자하고도 가능한 논문에 치중하거나 세부 전공서적을 출간하면서도 교과서를 출간할 엄두를 내지 않는 것 같다.

2011년 교수 생활을 시작하면서 고시계에서 사법시험 합격기를 읽고 상당한 충격을 느꼈다. 합격기에서 추천되는 책들은 대학교수의 교과서가 아닌 신림동강사들의 수험서였고, 대학교수가 아닌 신림동강사의 강의에 큰 도움을 받았다며 감사를 드린다는 내용 일색이었다.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우리나라 법학도들에게 법학교수의 존재 의의는 무엇일까.

최근 교수들이 출간하는 교과서를 보면 판례 중심으로 출간하거나 여러 명이 나누어서 공동저술을 하기도 한다. 기본서라기보다는 입문서와 같은 쉬운 내용의 책이나 심지어 학생들의 선호에 따라 과감하게 내용을 줄인 요약서를 출간하는 모습도 보인다. 과연 이런 자구책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심지어 어느 요약서의 머리말에는 '로스쿨 시대의 표준적 교과서는 단언컨대 가장 얇은 것이다. 변호사시험을 위해서는 가장 얇은 교과서 한권과 가장 얇은 최근 3개년 판례정리집 한권만 보면 충분하고 그 이상 보면 낙방한다. 판례는 이해할 필요가 없고 이해하면 오히려 손해다. 판례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암기의 대상이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변호사는 판례의 결론만 알면 되는 것이다'라고 소신인지 푸념인지 구별이 어려운 정신없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논거도 모르고 판례를 외우기도 어렵지만 논거를 쓰지 않은 답안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사법시험이나 변호사시험이나 근본은 다르지 않는 것이다.

로스쿨의 많은 학생들이 로스쿨에서 강의를 받으면서 강의교재로 교과서를 처음 접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교수들의 자체 강의안 자료를 프린트하여 본 후에 곧바로 수험서로 전환한다고 한다. 교과서는 재고가 남아 개정판을 제대로 내지도 못하고 쌩쌩 달리는 수험서와의 경쟁에서 더욱 뒤처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럼에도 로스쿨시대의 법학도들에게 법학의 체계적인 이해와 함께 법학에 진지한 흥미를 불어넣기 위하여 지금 이 시간에도 교과서를 열심히 준비하시는 교수들에게 찬사를 보내면서 법학도와 법조인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는 멋진 법학교과서의 탄생을 소망해 본다.

이창현 교수 (한국외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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