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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언

단지의 아픈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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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일어나 미리 얼려 둔 다진 마늘을 자르다 새로 산 식칼에 순식간에 손가락을 베였다. 서투른 칼질 탓이지만 딱딱하게 언 마늘을 힘으로 억지로 자르려 한 게 화근이었다. 조금만 기다렸다가 언 마늘이 녹은 다음 잘랐더라면 아무 일 없었을 텐데 말이다. 잘린 손가락을 부여잡고 펑펑 우는 만삭의 아내를 달래가며 겨우 택시에 올라탔다. 집 근처 대학병원에 도착해서 한숨 돌렸지만 그로써 안심할 게 아니었다. 명색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다는 대학병원을 찾아갔는데도 정작 수술할 줄 아는 의사는 컨퍼런스에 갔다고 다른 병원을 찾아 가랜다. 가는 날이 장날이다. 별 수 없이 난생 처음 앰뷸런스에 몸을 싣고 간이침대에 누웠다. 가뜩이나 아픈 것도 견디기 힘든데 '삐뽀삐뽀' 울리는 요란한 소리에 만감이 교차한다. 손가락 하나 잘려도 이러할 진데 중상을 입은 환자는 오죽할까. 그렇게 한참을 달려 외상 전문 개인병원에 도착했건만 애초에 당장 수술이 되리라 기대한 것부터가 오산이었다. 이미 잡힌 수술 일정이 있다고 다음 날이나 가능하다며 입원부터 하란다. 게다가 며칠 입원해야 할지도 모른다니. 봉합만 간단히 하고 곧장 사무실로 출근할 생각이던 내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다행히 수술만큼은 잘되어 엄지손가락을 펴고 접는 데 어려움은 없으나 움푹 페인 자국을 볼 때마다 3년 전 그 심장 쫄깃했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 들어 자신의 직관과 판단이 옳다고 타인의 잘못을 헤아리며 비판하는 게 일상이 되어 버린 세태를 자주 접하며 문득 그 단지의 아픈 기억이 떠올려진 건 왜일까.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태복음 7장 1절 ~ 2절)." 스스로 세운 기준과 맞지 않다고 나중에 자신에게도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걸 모른 채 남을 비판하고 헤아리는 데 주저함이 없는 건 예수님이 산상보훈 말씀을 토로하시던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너도나도 자신의 입맛대로 맛난 요리를 하려 하지만 힘만 믿고 억지로 언 마늘을 자르다보면 제 손가락을 자를 수 있다. 손에 길들여지지 않은 칼일수록 더하다. 잊지 말아야 하는 건 잘려진 손가락은 아무리 잘 봉합한다 한들 예전만 못하다는 거다. 


김대현 고법판사 (서울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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