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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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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피'라니 레오 까락스 감독의 영화를 떠올릴지 모르겠다. 데이빗 보위의 ‘모던러브’가 흐르는 중에 어둑한 파리를 춤추며 달리는 드니 라방의 이미지만 생각날 뿐, 누벨이마주의 거친 편집도 에스에프를 넘나드는 구성도 낯설고 불편한 그런 영화였다. 


이번 세기의 나쁜 피는 훨씬 선명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존 캐리루가 쓴 ‘배드 블러드(bad blood)’ 말이다. 스탠포드를 중퇴한 84년생 엘리자베스 홈즈는 ‘테라노스’의 창업자로서, 간단한 키트 ‘에디슨’을 사용하여 손끝에서 채혈한 몇 방울을 전송하면 200여 가지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는 신기술 개발을 선전했다. 한 컵씩 뽑아내는 정맥 채혈의 공포도, 진단 비용의 걱정도 사라질 예정이라 했다. 기업 가치는 90억 달러로, 홈즈의 지분 가치는 그 절반으로 뛰었고, 그세 홈즈는 스티브 잡스의 현신이 되었다. 홈즈는 검정색 목폴라를 입은 사진과 장밋빛 전망을 부각시키는 인터뷰를 남발했고, 존 캐리루는 거기서 드러난 기술적 취약함을 놓치지 않고 테라노스의 직원들을 탐사, 취재한 끝에 에디슨이 거짓말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특종에 성공한다.

문제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전례 없고 어떤 것들은 진부하다. 홈즈가 회사의 2인자와 연인관계임을 숨기고, 최고의 리티게이터 데이비드 보이스를 내세워 진실의 목소리를 협박하고, 조지 슐츠나 헨리 키신저를 이사로 선임하여 그릇된 욕망의 방패막이로 삼는 배포만큼은 참신하다. 회사법적으로는 이사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증권법상으로는 투자자들에게 회사의 위험을 알리지 않았으며, 보건 당국도 규제의 공백을 핑계로 손을 놓고 있었다는 점은 여느 사기나 다르지 않다.

‘배드 블러드’는 홈즈가 신데렐라에서 잿더미로 몰락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매혹적인 비즈니스 저널리즘이 그렇듯 바클레이즈 트레이더들의 라이보 조작을 다룬 ‘스파이더 네트워크’나 헤지펀드 매니저 스티브 코언의 내부자거래에 관한 ‘블랙 엣지’와 비견되는 빠른 전개, 유발되는 공분, 배신과 암투를 모두 담고 있다. 번역을 기다리기에는 가을이 너무 짧다.

김정연 교수(인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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