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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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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여름이 지나고 어느덧 가을이 찾아왔다. 맑고 투명한 가을 햇살을 보니 문득 국어시간에 배운 안톤쉬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산문 속의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이라는 표현이 생각난다. 술자리에서 이 산문을 얘기했더니 요즘 교과과정에서는 없어졌다는 후배의 말이 나를 슬프게 했던 기억도 난다. 초추의 양광 속에 잠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 빠져본다.


울음 우는 아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 한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추의 양광이 떨어질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가을날 비는 처량하게 내리고, 친구들과 마신 술로도 모자라 밤 늦게 홀로 찾은 텅 빈 해장국 집, 그 어둑한 한쪽에서 숙제하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 아이는 커서 몸을 휘청이며 홀로 들어와 빈 눈빛으로 술을 따르는 아저씨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고 쓰겠지….

첫 휴가를 나와 복귀를 앞둔 이등병의 흔들리는 눈빛과 이를 바라보는 연인의 젖은 눈빛. 아들을 훈련소로 보내고 집에 올 때까지 울었다는 친구. 처음에는 훈련소로 가는 아들이 애달파서, 나중에는 그 아들의 뒷 모습에서 젊었을때 외로웠던 자신이 떠올라 울었다는데, 아 친한 친구였던 나는 그때 무슨 일이 있어 친구의 입대를 동행하지 않아 지금까지 친구를 울리는가.

놀이공원서 돌아오다 듣는 이적의 거짓말거짓말거짓말.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버림받고 읽는 생택쥐베리의 어린 왕자, 생택쥐베리는 어찌 동화 속에 사랑의 모든 것을 그리 녹여 넣었는지. 가족을 모두 외국에 보내고도 보러가지 못하는 펭귄 아빠가 읽는 이중섭 화가의 일본에 있는 가족에게 보낸 엽서. 가난했던 기억을 떠올려 눈물 짓게 만드는 기형도 시인의 시집, 젊은 날의 나는 왜 그리 외롭고 비루했는지. 그날 나가 그날 들어오지 못하고 그날 들어와 그날 나가는 젊은이의 열정 페이 그리고 이번 생은 아닌 것 같다는 낮은 읊조림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아들 동상을 닦는 최동원 선수의 어머니. 아, 어머니….

봄 학기 중간고사 기간에 봄비에 속절없이 흩어지는 목련꽃. 초겨울 양수리의 물안개. 홀로 몸을 실은 강릉으로 가는 막차에서 본 그믐달. 술을 부르는 늦가을의 개와 늑대의 시간, 그 시간에 비가 오면 한번도 술집을 거르지 못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학교 다닐 때 주말 내내 괴로워만 하다 일요일 밤 숙제를 몰아하던 버릇을 못 버려, 편집 시간 마감을 앞두고 먼 외국으로 출장가는 비행기에서 잠 못자고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나를 슬프게 한다.


김상곤 변호사 (법무법인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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