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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쉽게 씌어진 시(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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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詩)’ 중에서 -

영화 ‘동주’를 보면, 시대의 비극 앞에 소극적인 자신과는 달리 조국의 독립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는 사촌 송몽규에게 깊은 열등감과 자괴감을 느끼던 윤동주가 ‘쉽게 씌어진 시(詩)’를 통해 내면의 열등감과 자괴감을 세상에 드러내 보이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 윤동주를 향해 송몽규는 시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문학이라는 이름 뒤에 비겁하게 숨는 것이라고 비난했지만, 윤동주는 후쿠오카 교도소에서 스물 여덟 해의 짧은 생애를 마감할 때까지 인생의 굴곡마다 시를 썼다.

일제 강점기의 비극적 시대가 아니더라도 우리 인생은 여전히 살기 고달프고 버겁다. 특히 법정에 서는 삶은 대부분 이 사회에서 가장 어둡고, 아프고, 억울하고, 절망적이다. 그러기에 당사자들의 아픔과 절망 앞에 판결이라는 이름 뒤에 숨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판사로서 윤동주의 부끄러움은 낯설지 않다. 나름 중견법관인 내게도 법정에서 논리적인 주장 대신 자기 내면의 분노와 좌절만을 날카롭게 드러내는 당사자들을 대면하는 일은 쉽지 않다.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당사자들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고 실체진실과 정의에 부합하는 판단을 내리는 것이 얼마나 요원한 일인지 실감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려드는 사건에 떠밀려 복잡다단한 당사자들의 삶은 몇 장의 얄팍한 판결문 속에 몇 개의 문장으로 결정되고 만다. 최선을 다하여 사건을 파악하고, 단어 하나에도 몇 시간씩 고민하며 판결을 작성하고 있지만, 그들의 삶의 무게에 비한다면 내가 쓰는 판결은 너무나 쉽게 씌어지고 있다. 판사 역시 슬픈 천명(天命)일 진데 과연 나는 이처럼 쉽게 씌어지는 판결에 매일 밤 홀로 침전하며 부끄러워했던가. 그 어느 때보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비난이 높은 요즘 여전히 쉽게 씌어지고 있는 나의 판결이 더욱 부끄럽다. 그러나 판사는 재판을 하는 사람이고, 판사는 판결로 말할 수밖에 없다. 오늘 나의 부끄러운 자각이 내일의 성장을 위해 내가 나 자신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맞잡은 최초의 악수가 되기를 바래본다.

이은혜 판사 (서울동부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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