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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여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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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인공이 당혜를 신고도 월담을 하여 뜻을 이루고자 내쳐 뛰어가는 드라마 장면에 빠져들고 있자니 미국행 기내에서 한달음에 읽은 조선희 장편소설 ‘세 여자’가 떠올랐다. 

 

‘세 여자’는 1925년 여름 단발의식을 치르고 천변에서 탁족을 하는 세 여인의 사진 한 장을 모티브로 시작한다. 허헌의 딸 허정숙은 다섯 번의 결혼으로 성이 다른 세 아이를 두었으며 연안으로 건너가 무장항일운동을 이끌고, 북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을 지낸 이다. 고명자는 김단야의 연인이었으며, 공산주의 운동과 친일 행적을 오가다 해방 후에는 여운형의 측근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세죽은 음악공부를 하러 건너간 상해에서 박헌영을 동지로 만나 혼인을 하였고, 위 사진을 세상에 알린 비비안나를 낳았다. 그녀는 이후 모스크바에서 재혼한 김단야가 스파이 혐의로 처형되자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하게 된다. 평양에서 인민의 지도자로 은퇴한 허정숙은 그저 평안하게, 딸을 만나러 모스크바로 향하던 주세죽은 기차간에서 폐렴에 걸려, 그리고 고명자는 전쟁 통에 쓸쓸하게 서로 다른 죽음의 자리를 맞이한다. 

 

그녀들이 대의를 위해, 때로는 생존을 위해 선택했던 삶의 궤적들은 소설의 씨실이 되었고, 1920년의 상해에서부터 서울, 모스크바, 중국대륙과 중앙아시아를 거쳐 1956년 평양에서 막을 내리는 역사의 격랑들은 소설의 날실이 되어 촘촘하게 교차하고 넘나든다. 작가의 깊이 있는 취재와 엮어내는 솜씨는 책을 손에서 놓을 틈이 없도록 만드는 바탕이 되었다. 

 

세 여자를 속박하던 굴레와 모순들은 사라진 지 오래고,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선택의 기로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시절이다. 그러나 담을 넘고, 국경을 건너고, 편견과 관습을 뛰어 넘어서려는 자들은 여전히 불온하고, 때때로 불우하다. 법률가란 자꾸 경계를 세우고, 그 경계로 사물의 이치를 재단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며, 경계 속에서 안온하려 한다. 그녀들의 로망을 통과하는 한시적인 월경(越境)에 동반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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