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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언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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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강원도 양구에서 군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지금의 양구는 서울에서 고속도로와 여러 터널을 통해 두 시간 정도면 닿을 수 있고 국토 정중앙이며 조선백자의 고향이라는 곳이지만, 옛날에는 서울까지 8시간이 걸리고 중간에 소양호를 배 타고 건너면 좀 더 빠르다고 하는 그냥 오지였다. 오죽하면 강원도 인제 원통에 군입대 한 병사들이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 죽겠네”하면서도 “그래도 양구보다는 낫잖아” 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까.


아들이 미국에서 공부하다 얼마 전 입대를 했는데, 양구 군부대에 자대배치를 받았다는 소식을 전한다. 50년이라는 긴 세월을 사이에 두고 할아버지와 손자가 같은 부대에서 근무한다는 생각을 하니 뭐라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이 북받친다. 그 소식을 병석에 계신 아버지께 전하니 가만히 눈물을 흘리신다.


자대 배치 후 처음 면회간 날, 아빠 때문에 멀리 양구에 떨어졌다고 투덜대는 아들 등을 다독여 부대로 돌려 보내고 오랜만에 고향을 둘러 본다. 여러 군데 터널이 생겨 교통은 정말 편해졌지만 펀치볼부터 두타연에 이르는 산세는 전혀 변한 게 없다. 잠시 들른 박수근 미술관에서 작가 연보를 읽는데 “1963년(49세) 과음이 계속되던 끝에 신장과 간이 나빠지고 그로 인해 발병했던 왼쪽 눈의 백내장 수술비용이 없어 악화된 뒤에야 한 안과 병원에서 수술함. 그러나 수술 결과가 좋지 않아 더욱 고통을 받다가 다른 병원에서의 재수술 과정에서 시신경이 끊어져 한 눈을 아예 보지 못하게 됨. 이 후 안경을 끼게 되고 오른쪽 눈으로만 그림을 그림”이라는 대목에서는 마음이 짠해진다.


양구를 떠나 서울로 돌아오는 밤길, 고향을 떠나 지금까지 살아온 긴 세월의 일들이 차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가로등처럼 하나씩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문득, 누군가는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는 지난 내 부끄러운 기억들을 남들이 모르는 나만의 노트에 끄적거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양구에서 물놀이 하던 아이가 벌써 그런 나이가 된 것일까. 


김상곤 변호사(법무법인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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