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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항소심 재판부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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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디에도 없는 판사들이 온다.” 현직 부장판사가 집필해서 더 유명해진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의 홍보 카피였다. 인간미 넘치는 중년의 부장판사, 경력 3~4년의 까칠한 우배석, 법조경력 전무한 좌충우돌 좌배석. 도제식 합의부 시스템의 이상형을 보여 준 이 드라마는 법조인들에게도 많은 재미와 감동을 주었다. 


그러나 이 같은 합의부는 곧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법조일원화와 경력법관제, 변호사업계의 불황과 평생법관제의 정착으로 법관의 신규 임용과 퇴직이 모두 감소하였다. 평판사의 숫자는 줄고 부장판사의 숫자는 늘어나 법관의 인력구조는 하후상박형에서 점차 상후·하박해지고 있다. 부장판사 보임 전까지 배석판사로 근무하는 예가 드물지 않게 되었고, 이원화 제도 초기의 예상으로는 이미 재판장의 역할을 수행하였어야 할 고법판사들이 길게는 7년 이상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기존의 도제식 시스템이 수십년간 지속된 것은 그것이 최선이어서라기 보다는 당시의 법원 인력구조에 부합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매년 100여명의 신임 법관이 임관되고 상당수의 중견 법관들이 퇴직하였으며, 고등법원 배석판사들이 항소심 재판 경험의 부족을 단기간(2년)의 초인적 근무로 감당하였던 과거와 현재의 상황은 너무나도 다르다. 


십수년 전 미국 연수 중 참관한 연방항소법원의 재판절차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연륜이 지긋한 3인의 법관이 재판장, 주심이 따로 없이 사건을 파악하여 능동적·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그것이 무질서하다거나 중구난방으로 보이지 아니하였다. 이러한 절차를 보고 들은 당사자라면 항소심까지의 재판만으로도 큰 절차적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항소심의 동등경력자 구성방안’은 2004년 사법개혁위원회 시절부터 논의되었고, 이원화 제도 초기에는 향후 고등법원 재판부는 자연스럽게 대등경력 법관으로 구성될 것으로 예견됐었다. 최근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지방법원 항소부는 부장판사들로 대등부를 구성하자는 안을 결의하기도 하였다. 항소심 재판부의 구성과 재판의 모습이 바뀌어야 할 때가 되었고, 변화된 인력구조와 기존 시스템과의 부정합성이 한계에 이른 지금이야말로 그 적기라 할 것이다.


현재의 법원의 위기가 도제식 시스템에 내재한 수직적 구조나 서열주의에서 싹튼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무너진 사법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충실한 재판과 더불어 이전과는 다른 환골탈태의 모습을 국민들께 보여드려야 할 것 같다. 대등한 경력의 법관 3인이 치열하게 토론하고 상호 비판 견제하여 최상의 결론을 내므로, 재판부 밖 누구도 부당하게 영향을 미치려는 꿈조차 꿀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재판부 구성보다 더 나은 방안이 있을 수 있을까. 


고법판사를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직무대리로 보한 8월 13일자 인사는 실질적 대등재판부 구성의 첫 걸음이라 할 것이다. 다른 한 축으로 수평적인 합의부 문화와 실질적 3자 합의의 이상적인 모습을 앞서서 구현할 부장판사들로 구성된 대등재판부의 등장이 기대된다. 그 재판의 무게는 상고심에 버금갈 것이고 이후 구성될 다양한 형태의 항소심 재판부와 후배 법관들에게 오래도록 귀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숙연 고법판사(서울고등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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