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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청년시대

[지금은 청년시대] 어쨌거나 즐겁게들 하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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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KBO 에이전트로서 가장 주목했던 이슈는 해외 유턴파이자 현재 경찰청 야구단에서 군 복무를 하고 있고, 내년 유력한 2차 드래프트 1순위로 예상되는 이대은 선수에 관한 것이었다. 골자는 이렇다. 드래프트 신청을 하지 않고 해외로 진출했었던 이대은 선수는 지난 프리미어 12 국제 대회에 참가하면서, 규약의 변경을 통해 KBO 복귀 시 2년의 유예기간을 경찰청 야구단에서 군 복무하는 것으로 보낼 수 있는 혜택을 받게 되었다. 이는 ‘이대은 룰’이라고까지 통칭된다. 


그런데 2년의 시간이 지나자 이대은 선수를 둘러싼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규약상 해외 유턴파가 다시 KBO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하여 구단에 지명이 되었을 때 ‘계약금’을 수령할 수 없다는 규정과, 연봉 역시도 ‘최저연봉(현재 2,700만 원)’으로 정해야 한다는 내용 때문이다. 이 규정은 더구나 2009년에 추가된 것으로, 2007년 해외로 진출하였던 이대은 선수에게 관련 규정이 소급되어 적용되는 것이 위법·부당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다. 이를 둘러싸고 ‘이대은 선수가 드래프트에 참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던 것이다.

위 루머는 이대은 선수가 지난 8월 9일, 드래프트 참가 신청을 하면서 일단락되었다. 다만, 법률적으로 불리한 규정의 적용에 대하여 다툴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대은 선수를 둘러싼 그간의 여론은 거의 ‘비판’과 ‘비난’ 중 하나였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 과정에서 이대은 선수의 입에서는 어떠한 발언도 나오지 않았는데 말이다.

요컨대, 이는 ‘초심’의 문제였다. 대중들은 이대은 선수의 실질적인 손해와 법적인 구제 가능성보다는, 2년 전 ‘좋아하는 야구를 하기 위해 KBO에 진출하고 싶다’는, 그의 초심에 주목한 것이다. 실제로 KBO는 이대은 선수의 국제 대회 출전 여부를 타진하면서, 군 미필 해외 진출 선수들의 국내 복귀에 부담이 될 수 있었던 규정을 대폭 수정하며 이 선수를 배려했으니 말이다. 이대은 선수의 속마음이야 어땠는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초심’을 잃기 쉬운 인간의 본성에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인기 프로 야구 선수의 도의적인 문제는, 언론과 대중에게 많은 떡밥을 제공하게 마련이다.

타인의 초심에 관심을 갖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우리 자신이 초심을 잘 지키지 못한다는 점을 방증한다. 똑같은 사람이니까,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잃는 최초의 마음가짐에 대하여 대부분 관대하며, 때로는 외면한다. 하지만 변호사로서, 특히 업무의 양이 늘어 가면 갈수록 이러한 태도는 지양해 마땅하다는 자기반성을 하게 된다.

처음 수습 변호사를 지원하던 시절, 필자는 수많은 직장으로부터(법무법인과 기업, 공공기관을 가리지 않고) 서류에서든 면접에서든 거절당했다. 없는 스펙을 만들어 내거나 성적을 위조할 수는 없으니, 자소서를 갈고닦는 것 말고는 달리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자소설’을 집필해 나갔다. 그때는, 기억은 정확히 나지 않지만 아마도 간절했을 것이다. 잘하려고 했을 것이고, 잘할 자신도 있었을 것이다. 열심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즐겁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나를 받아주는 곳은 있었다. 그리고 저마다의 유효기간만큼, 그 기간 동안 나는 아주 즐겁게 일했다. 사건을 맡아도 처음의 에너지가 쉬이 고갈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는 거절을 당하기보다는 거절을 해야 하는 입장인 경우가 생겼다. 제안서를 내밀었을 때, 받아들여지는 빈도수도 늘어났다. 과거 자소서의 그것처럼, 문장 하나하나를 고치기 위해 밤을 새는 일은 많이 줄었다. 그렇다면, 그에 비례해서 나의 즐거움과 성취감 내지는 열정도 커져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정말 그러한가 반문해본다.

언젠가 나의 의뢰인은 생각보다 지지부진한 소송 과정에 지쳐, 처음이라면 받아들이지 않을 상대방의 조정안에 날인하겠다고 체념하듯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나는 만류했다. 여기에 사인할 요량이었다면 진즉에 할 수 있었다고, 지금까지 잘 버텨오셨으니 저를 믿고 재판부의 판단을 받아보자며 들고 온 인감을 다시 봉투에 넣어 버렸던 기억이 난다. 지금의 나는 똑같이 말할 수 있을까.

일을 즐겁게 한다는 것은, 이를테면 전설 속 유니콘을 찾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일을 즐겁게 할 수 있었던 최초의 나를 상기하려는 노력은, 마냥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변호사라는 직역이, 무엇보다도 그런 노력을 경주해야만 하는 직역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다케히코 이노우에의 <슬램덩크>는 필자 나이의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만화를 넘어 일종의 교본, 바이블과 같은 만화다. 상당한 빌런이자 일종의 기믹으로 그려졌지만, 나는 북산이 전국 대회 1회전에서 만난 풍전의 에이스, 일명 ‘에이스 킬러’ 남훈에 대한 서사를 좋아한다. 본인을 농구에 입문하게 했던 노선생님의 런&건 농구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승리에 집착하는 선수가 된다. 의도하지 않았던 액션에 상대방 에이스를 부상 입히고, ‘에이스 킬러’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그는, 자신이 처음 가졌던 농구에 대한 마음을 잃은 채 표류한다.

그 초심을 일깨워 주는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평생 스승 노선생이었다. 관중석에 자신이 가르치는 초등학생들을 데리고 풍전고교를 응원 온 노선생에게 남훈은 초등학교에서도 여전히 런&건 농구를 가르치고 있는지 묻는다. 남훈을 깨우는 노선생의 대답이 걸작이다.

“어쨌거나 즐겁게들 하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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