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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만져만 주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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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기준이 무엇이냐"는 원고의 말에 행정청은 간단히 답한다. “매뉴얼에 나옵니다.” 규정대로 했으니 무조건 적법하다는 건데, 아무리 법전을 뒤져도 그 기준이란 게 보이지 않는다. 물어보니, 고시를 구체화한 내부 지침을 말하는 모양이다. 법률에서 규칙·고시 등에 세부 기준을 위임한 경우에 발생하는 이런 실랑이는 행정법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인데, 복지 행정이 문제 된 사건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장애의 유형을 열거하고 거기에 해당하지 않으면 장애인 등록 신청을 반려한다든지, 노인 장기요양급여 지급 조건을 정해 두고 그에 어긋나면 지급했던 것을 환수한다든지 하는 과정에서 분쟁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한정된 예산으로, 효율과 형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은 정부로서는 어떤 기준을 만들 수밖에 없고, 그리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담당 공무원들이 복잡한 사회 속에서 정교한 기준을 만드는 일의 전문가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문제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그 기준이 완전무결하지 않을 수 있다는 데 있다. 개인의 사정이나 특수한 상황이 반영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게 마련이다. 때로는 위임받은 범위를 벗어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규정대로’라는 말만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면서 법치행정을 하고 있다고 하는 일이 있으니 더욱 문제이다. 그 과정에서 오해도 생기고 결국 소송에 이른다. 그나마 아무것도 받지 못할 걱정에 문제를 제기하지도 못하는 원고는 억울한데, 피고는 마냥 당당하기만 하다.


이리저리 선을 긋고 줄을 세우는 국가의 권한은 막강하다. 돈에 맞추어, 보기 좋게 자질을 하다 보면 저울은 웬일인지 진짜 약자에게 불리하게 한쪽으로 기울기 십상이다. 행정법원이 ‘균형추’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개별 사건의 당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근거 규범부터 문제가 없는지 차근차근 심리하는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그 과정에서 교정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매 사건 추를 당기지 못하더라도, 만져만 주더라도 균형은 잡힐 수 있다. 스무 살이 된 서울행정법원이 미래 복지국가에서 할 역할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한지형 판사(서울행정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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