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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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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올 여름 그 많은 휴가지 중에서 같은 곳, 그것도 같은 호텔에서 회사 후배 변호사가 “형님”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어떠한 사전 의사 연락 없이 같은 휴가지를 고르고, 그것도 하필 같은 시간대에 호텔 로비에 나와 있을 확률은 아무리 높게 본다고 해도 수많은 인파가 가득한 모래사장에서 잃어버린 열쇠를 다시 찾을 정도의 확률이 아닐까 합니다.


어떠한 일이 우연히 일어났는지 아니면 필연인지, 단순히 상관관계(correlation)에 있는지 아니면 인과관계(causation)에 있는지는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매우 다릅니다. 법률가들이 하는 일들도 대체로 인과관계가 있는지를 따져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를 가려내려는 것들입니다. 그렇게 수많은 우연과 필연들이 결합되어 빚어낸 ‘사건’이라는 작품(masterpiece) 속에서 때로는 승자가 되기도 하고 패자가 되기도 합니다.


높은 천장,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샹젤리제가 달린 법정에서 기일이 진행될 때면, 가끔은 기록 속에서만 등장하던 이름들이 생명을 부여받아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눈앞에 나타나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어떠한 계기로 이 분들은 여기에 있게 되었을까? 그리고 어떠한 인연으로 나는 이 사건을 다루게 되었을까? 그리고 이 사건은 앞으로 이 드라마 주인공들의 인생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될까? 괌 인근 해상에서 만들어져 북상하고 있는 태풍처럼, 앞으로 우리가 담당하게 될 많은 사건의 사실관계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연인 듯 필연인 듯 만들어지고 있고, 언젠가 ‘2018년 8월 13일, 서울 어딘가에서’라고 시작하는 글자들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번 주에도 35도 이상의 무더위는 계속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고 해도 그 끝은 정해져 있습니다. 불과 몇 달 후 영하 10도가 넘는 칼바람을 맞으면서 두꺼운 패딩을 찾게 될 순간을 떠올린다면,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무더위도 조금은 더 쉽게 견딜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석근배 변호사 (법무법인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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