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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책

[내가 쓴 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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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의 품격이란 무엇일까. 이른바 ‘사회적 지위’(아직도 그런 것이 있다면)에 부합하는 세련된 말투와 몸가짐, 사무공간, 오랜 시간 집중해서 일하고도 흔들리지 않는 자세와 정신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종종 누군가의 신체에 철저히 의존하고, 오랜 시간 업무를 수행하면 허리가 아파 자세를 수도 없이 바꿔야 하며, 고급스러운 문화 자본을 습득할 유년기가 없었던 나에게 품격은 도달할 수 없는 상태처럼 보인다. 

 

나는 중학교 시절을 장애인들을 위한 특수학교에서 보냈다. 그때 만난 친구들 모두 각자의 삶을 당차게 살아가지만, 많은 경우 그들의 삶은 ‘품격’과는 거리가 멀다. 접근 불가능한 화장실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일상, 교육도 일할 기회도 부족하여 가난과 소외 상태로 빠지기 쉬운 삶. 부당한 차별과 혐오를 돌파하다보면 분노가 누적된다. 실망이 커진다. 고매한 태도로 희망찬 메시지를 던지는 ‘품격 있는 장애인’은 TV에서 장애를 극복했다고 칭찬하는 소수의 영웅들 뿐이다.

변호사가 되기로 했을 때 나는 이 ‘품격 잃은 자들’의 삶을 변호하자고 결심했다. 딱히 거창한 공익활동에 대한 신념은 아니었다. 나는 철저히 나의 계층적 이익을, 수평적 정체성(horizontal identity)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대변하기로 마음 먹었을 뿐이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라는 책은 그런 점에서 나 스스로에 대한 변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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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이 수행한 인권운동의 언어가 어떻게 사법체계 내부에서 통용되게 되었는지 등도 다뤘지만, 욕심을 내어 한발 더 나아가고자 했다. 내 질문은 다음과 같다. 법이나 도덕 같은 규범 체계가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 세상에서도, 장애를 가진 채 느리고, 어색하고, 불편하게 움직이는 이 ‘품격없는’ 우리들의 삶은 존엄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가? 


내 변론의 시작은 2009년 어느 때쯤, ‘법치주의’가 품격있는 나라의 핵심이라고 외치던 모 정치인에게서 비롯되었다. 그가 말하는 법치주의는 국민들이 떼를 쓰고 억지를 부리기보다 합리적이고 합당한 절차에 따라 법질서를 준수하는 세상에 대한 지향이었다. 법을 공부하기 시작한 나는 의심했다. 법치주의란, 억압받고 배제된 처지에 놓여 화내고 분노하는 정치공동체 구성원들의 ‘무질서’에 대해서조차, 합당한 절차를 준수하며 헌법이 규정한 인권보장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국가권력의 운영원리가 아닌가? 


만약 규범이 부재한 세계에서도 장애와 빈곤 등 각종 이유로 ‘품격’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존엄과 아름다움의 주체일 수 있다면, 우리 모두의 존엄을 사수하라고 명령하는 법이 지배하는 세상은 도대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법률가란 어쩌면 “법이 사라진” 공간에서 변론을 맡기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그 변론이 성공해야만, 비로소 법이 존재하는 세상의 정확한 모습이 상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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