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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언

작은 일상 큰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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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2학기 강의계획서 입력 기간을 알리는 공지를 보았다. 로펌을 그만둔 지 네 번째 계절이 지나고 있다는 뜻이다. 그간 책상에서도 일상에서도 변화가 생겨나는 것은 당연했다. 읽고 쓰는 일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점에서 책상 앞의 일들이란 대체로 비슷했다. 오히려 일상의 변화가 진폭이 컸다.

 

가장 큰 변화는 학생들의 등장이었다. 직장 동료, 의뢰인, 감독당국,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익숙하다고 자신하고 있었지만 나와 이해관계도, 인생 어느 지점의 경험도 공유하지 않는 학생들은 달랐다. 장강명 작가의 '당선, 계급, 합격'에서처럼, ‘공채’와 ‘동기’란 번역조차 불가한 지극히 한국적 현상이고, 그 보기 드문 생존자로서 입학동기, 시험동기와 입사동기에 둘러싸여 살아온 내가 학생들의 욕망과 좌절을 이해할 방도란 없었다. 1.5배속쯤으로 강의했고, 매 시간 일희일비하거나 주로 실망했고, 조급한 마음에 상처 주는 말이나 안겨주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책에도 정답이 없고 환심을 살 말주변도 없으니 배운 그대로 노력하는 수밖에. 채점 기준에 따라 첨삭한 시험지를 돌려주거나 진도에 맞게 뉴스를 공유하고, 추천도서 목록을 나눠주었다. 소논문 작성 강좌를 개설하여 주제 선정, 자료 검색, 목차 작성, 내용 집필 단계별로 피드백을 주기도 했다. 공모전 추천이건 취업·진학상담이건 시간을 좀 더 들이려 애를 쓴다.

굳이 가르침의 비법을 자랑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이런 노력이 교수의 성취를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줄 알기까지 오래 걸린 것도 아니다.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을 읽다보니 3년간 한 편의 논문으로 학자로서 성공할 수 있던 시절도 있었다고 하나, 이제는 "3개월에 한편도 모자란다"고들 하기 때문이다 . 다만, 흉내만 내기에도 벅찬 일인 줄을 경험하고 나니, 법률가와 연구자로서 한 존재의 온전한 성장을 위해 비할 바 없는 공과 품이 들었을 줄을 깨달았다는 점만큼은 고백하고 싶었다. 그러니 다음 학기에도 미련한 노력이나마 계속하지 않을 요량이 없다.

 

김정연 교수 (인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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