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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판사도 보기 힘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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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에나 복사할 수 있다고 하니 기일을 변경하여 주십시오.” 경찰 단속에 터 잡은 행정사건을 다루다 보면 형사재판 기록에 대한 문서송부촉탁을 하는 일이 많은데, 거의 예외 없이 이런 기일변경신청이 들어온다. ‘형사 기록은 아직 종이였지’ 하는 생각과 함께 형사재판을 하던 때가 떠오른다. 기록을 검토하려고 했더니 공판검사가 대출해 가서 기록이 없단다. 재촉해서 받아왔더니 이번엔 열람 신청이 들어왔단다. 기록을 독차지하고 차분히 보려면 야근하는 수밖에 없다. 무더운 여름 밤 골무를 끼고 기록을 보던 중, 서증 조사할 때 나왔던 얘기를 찾고 싶은데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앞으로 뒤로 한참을 뒤적인 다음에야 수사보고서 어디에 적혀 있는 걸 찾았다. 유레카의 기쁨은커녕 한숨만 나온다.

형사재판 기록을 아무 때나 보지 못하고, 편하게 볼 수도 없는 이유는 종이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재판과 달리 형사재판만은 아직 종이 기반이다. 보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기록이 하나밖에 없으니 한 번에 한 명씩만 가능하다. 원본을 보건 복사를 하건 줄을 설 수밖에 없다. 애당초 ‘찾기’ 기능 같은 건 없기 때문에 순서가 돌아와도 효과적으로 기록을 검토하기 어렵다. 그나마 사본으로 접할 수밖에 없는 경우의 고충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겠다.

결국은 형사 기록 전자화로 해결할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국민은 이미 전자소송에 익숙해져 있고 변호사들도 바라는 눈치다. 물론 형식과 절차가 그 어느 재판보다 중요한 것이 형사재판인 만큼 전자화의 범위나 방식에 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겠다. 개인정보보호의 문제도 많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렇지만 마냥 기다리기보다는 낮은 단계부터라도 시작해 보면 좋겠다. 전자적 제출이나 송달은 뒤로 미루더라도 전자사본 기록을 만들어 활용해보는 것부터 해 보면 어떨까. 한 번에 여러 사람이, 각자 편한 시간에 볼 수 있으니 나름 큰 걸음이겠다. 검색 기능도 탑재되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 다시 형사재판을 할 때에는 기록 좀 편하게, 마음껏 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한지형 판사 (서울행정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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