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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원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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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를 타고 여행할 때 가끔 좌석 팔걸이 옆면에 부착된 이어폰 단자를 쳐다보게 된다. 벌써 10년도 훨씬 지난 일이지만, 당시 원고는 국가를 상대로 서울-부산간 KTX 요금 상당액을 구하고 있었다. 처음 개통된 KTX에 대해 큰 기대를 갖고 이용하였던 탓일까. 변호사 없이 홀로 소송 중이던 원고는 국가가 국민을 모두 장애인 취급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처음 개통될 당시 KTX 일반실에는 특실과 달리 객실 내 모니터 방송을 듣기 위한 이어폰 단자 자체가 없었던 까닭이다. 따로 조정기일을 잡고 피고 소송수행자에게 이미 마련되어 있다는 KTX 객실 개선 계획에 관해 설명하게 했다. 원고는 원하는 내용을 확인한 후 소를 취하하였다. 소가 5만 원도 되지 않는 소액사건임에도 당시 원고는 그 소송을 제기하고 유지할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수년이 지나 로스쿨에서 강의를 할 때다. 앞으로 변호사가 되면 소액사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라면서 그 사건을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강의 후 한 학생이 예상 못한 질문을 해왔다. 그 사건의 청구원인이 무엇인지, 승소하려면 어떻게 법리를 구성하면 좋은지를. 변호사가 될 학생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질문이었을 것이나, 사실 당시 재판과정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소가가 작아서일까. 아니면 이전 재판장을 상대로 기피신청을 한 적이 있어서 선입견이 있었던 걸까.

민사소송에 관한 강의를 준비할 때마다 그때 단호하게 권리를 주장하던 원고와 그를 위한 변호사가 되었을 것 같은 그 학생을 떠올리곤 한다. 지금 다시 그런 사건을 맡게 되면 어떻게 진행하게 될까. 혹시 쌓여 있는 수많은 사건을 빨리 처리하기 위해, 사건 메모지에 ‘청구원인을 석명할 것’이라고 써두고 첫 기일 법정에서 원고에게 청구원인이 무엇인지부터 정리하라고 하거나 혹은 그럴듯한 말로 소 취하 권유부터 하지는 않을까. 원고는 소송 진행에 만족하며 소를 취하할 수 있을까. 피고는 소송 진행에 불만이 없을까. 여러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법정에서 소송 당사자들의 얘기를 들어 줄 충분한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10년이 지나면 그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까.

여러 가지로 법원에 대한 불신이 많은 때다. 그래도 묵묵히 법정에서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을 재판부에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권성수 교수 (사법연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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