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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위대한 법률가 김병로의 삶을 통해 답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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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김병로’ 대법원장에 관한 기사를 읽게 되었는데, 그 내용 중에 눈에 확 들어오는 내용이 있었다: 1952년 ‘국군의 거창양민학살사건’ 국회조사단장으로 활동하던 의원이 군인 간부를 권총으로 사살한 혐의로 기소되었는데, 당시 1심 재판부는 그 군인이 서 의원을 먼저 살해하려고 하였다는 항변을 받아들여 정당방위를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다. 이에 이승만 대통령이 “현역장교를 권총으로 쏴죽였는데 무죄라니 될 말인가”라며 판결을 비난하자, 당시 대법원장이었던 김병로는 “판사가 내린 판결은 대법원장인 나도 이래라 저래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무죄 판결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절차를 밟아 상소하면 되지 않는가”라고 답했다.

이 당시 한국전쟁 중이었고 군인이 생사여탈권을 쥘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때였으며 조금만 좌파적 성향이 있어도 숙청될 수 있는 정권 치하였다는 상황 등을 조금이라도 고려해본다면, 이승만 대통령을 대적하는 정치인을 정당방위로 보아 무죄판결을 선고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인데, 그 재판부는 법관의 양심에 따라 소신 있게 무죄판결을 선고하였다. 그런데 1심 재판부가 이같이 법관의 양심에 따라 판결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김병로 대법원장이 자신의 권한과 책임을 다하여 외부의 권력으로부터 법원의 독립을 지켜냈고 내부적으로 법관의 판단을 존중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김병로는 일본에서 유학하다가 귀국해서 1년간 판사를 한 후 변호사로서 일제 강점기 동안 많은 사람들(3·1운동 참가자, 독립운동가 등)을 변호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동포를 위해 변호사를 한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을 것인데, 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에 취임하였는데, 권위주의적인 시대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법정에서 검사와 변호인의 자리배치를 대등하게 하고, 법률용어의 한글화와 전세권 창안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는 변호사 활동을 하면서 몸소 느낀 것을 개혁에 반영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1950년대에 박봉을 호소하는 판사에게 "나도 죽을 먹으면서 살고 있소. 조금만 더 참고 국민과 같이 고생해 봅시다"라고 설득하였다는 일화는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김병로는 나라 없이 방황하는 자신의 모습을 빗대어 ‘가인(街人)’이라고 아호를 스스로 지었다고 하는데, 이 이야기를 알기 전까지 그 '가'를 ‘아름다울 가’로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몹시 부끄러웠다.

최근 법원, 검찰, 변호사 등 법조계의 개혁과 변화를 위해 많은 논의가 있는데, 이렇게 훌륭한 법률가 선배의 삶에서 많은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조정욱 변호사 (법무법인 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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