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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아(ANAr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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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들의 시대가 찾아왔어/ 이제 세상은 새로운 천년을 맞지/ 하늘 끝에 닿고 싶은 인간은 유리와 돌 위에 그들의 역사를 쓰지… 시인들도 노래했지 수많은 사랑의 노래를/ 인류에게 더 나은 날을 약속하는 노래를.”

노트르담 성벽의 “아나키아(ANArKH, ‘숙명’)”는 빅토르 위고에게 영감을 주어 '노트르담 드 파리'가 탄생했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인간이 도저히 거스를 수 없는 숙명적 시대 변화와, 그 앞에 작은 인간의 존재를 그린다. 중세시대를 상징하는 “전능한 신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뮤지컬 넘버 “피렌체(Florence)”를 시작으로 구텐베르크와 코페르니쿠스로 상징되는 “르네상스 시대”가 개막한다.

“개혁자 구텐베르크 세상을 변화시켰고/ 쉴 새 없이 새 글이 인쇄되는 뉘렌베르크/ 수많은 시와 노래, 논문들과 팜플렛/ 새로운 사상들 모든 걸 바꿔 놓을/ 언제나 작은 것이 큰 것을 허물고/ 문학은 건축을 무너뜨리는 법.”

위고의 ‘아나키아’는 거스를 수 없는 숙명을 상징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또 숙명에 필연적으로 저항하며 서서히 시대의 모습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삶과 생각을 변화시킨다.

이방인 여인 에스메랄다, 따뜻함이 추한 외모에 가려진 꼽추 콰지모도, 소명과 욕망 사이에서 방황하는 사제 프롤로의 치열한 삶에서 우리네 모습을 보았다. 도도한 물결 같은 역사의 흐름 속에 개인은 역사와 무관한 듯, 아등바등 쫓기며 하루하루의 삶을 이어나가는데, 쌓여진 그 시간은 역사 속에 어떻게 기록될까.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는 빌 클린턴이 1992년의 미국 대선에서 사용한 슬로건이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후보 당시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는데, 결국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이 되었다.

‘경제’는 불평등을 때로 암시하나, 그보다 소시민들의 하루하루 삶의 처절한 치열함, 가장의 굽은 어깨, 청년의 학비, 내 자식들의 미래, 나아가서는 모두의 자존감을 의미한다. 도저히 거스를 수 없는 숙명같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작은 개인으로 조용히 절규해본다. 우리의 새천년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후세의 '인류에게 더 나은 날을 약속'할 수 있을지.

 

홍지혜 변호사 (법무법인 제이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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