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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행기

[나의 여행기] 스위스 다녀온 호문혁 교수

알프스 마터호른, 하얀 속살 감추려 눈보라·구름과 숨바꼭질

 

금년 31일부터 사흘 간 스위스 Basel에서 독일권 민사소송법학회 학술대회가 열렸다. 여기서 독일권이란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를 말한다. 이 세 나라의 민사소송법 학자들이 모여서 하는 학회이다. 우리는 학회를 1년에 네 번 개최하는 것이 보통인데, 독일권 민사소송법학회는 2년에 한 번씩 열린다. 보통 23일 하는데, 분위기는 친한 친구들 오래간 만에 만나서 반가워하는 축제 같고, 분야는 판결절차, 가사소송, 강제집행, 도산 등 넓은 의미의 민사소송법 전체를 다룬다. 이 세 나라에서 공부한 그리스, 터키, 헝가리, 폴란드, 일본 등 외국의 민사소송법 학자들도 게스트로 많이 참가한다. 나도 80년대 유학 시절부터 가끔 참가해서 낫설지 않은 학술대회이다. 가장 최근에는 2014년 봄에 독일 Freiburg에서 한 대회에 참석했다. 그 해 10월에 하는 국제소송법학회(IAPL) 2014년 연차대회 홍보를 겸한 참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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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산맥의 최고봉인 마터호른(Matterhorn)의 오른쪽에 위치한 연봉들.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웅장한 설산이 푸른 하늘과 어우러지며 장엄미를 뿜어내고 있다. 최고봉인 마터호른은 눈보라와 구름에 가려 끝내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구경꾼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금년에는 마침 사법정책연구원에서 퇴직도 하여 바람도 쐬고, 지도교수인 Peter Arens 선생님 작고 후에는 마치 양아버지처럼 나를 신경 써 주신 Dieter Leipold 선생님도 뵙고 싶어서 Basel 학술대회에 참석하러 스위스에 갔다. 뿐만 아니라 스위스에는 딸아이 가족이 살고 있어서 오래 보지 못한 외손자와 잘 사귀어 두려는 목적도 매우 크긴 했다. 딸아이 집에 머무르며 Basel 학회도 다녀오고, München에 가서 사법정책연구원과의 학술교류를 제안한 MünchenStreinz 교수를 만나 교류 방안에 관해 이야기도 하고, Freiburg에 가서 Leipold 선생님과 Bruns 교수, 유학 중인 제자들도 만나고 하며 한 달을 보냈다.

 

외손자가 Basel의 초록색 트람을 타보고 싶다고 해서 학회에 갈 때 딸아이와 손자와 함께 기차로 Basel에 가서 시내에서 초록색 트람을 타고 호텔로 갔다. 아이들은 당일로 되돌아가고 나는 학회 전야만찬에 참석했다. 대강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Leipold 선생님이 나를 발견하고는 너무 반가워하며 당신 옆에 와서 앉으라고 강권(?)하는 바람에 자리를 옮겼다. 만나면 언제나 뭔가를 배우는 좋은 선생님인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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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바젤 미술관(Kunstmuseum) 마당에 설치된 로댕의 ‘깔레의 시민(Les bourgeois de Calais)’ 조각상.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에서 끝까지 저항했던 깔레시 시민들의 몰살을 막기 위해 죽음을 자진하고 나선 6명의 영웅을 기리기 위해 만든 작품이다. 그러나 로댕은 이들의 모습을 영웅적으로 만들지 않고 죽음을 앞두고 갈등으로 고뇌하는 처참한 모습으로 묘사해 깔레 시를 실망시켰다. 이 작품은 후대에는 로댕의 천재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작품으로 재평가 받았다. 아래는 조각상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사진. 죽음에 대한 공포와 고뇌가 너무나 잘 표현돼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온다.

 

학회 끝나고 80년대에 가본 적이 있는 미술관(Kunstmuseum)에 들러보았다. 외국에 처음 나가서 미술관다운 미술관을 처음 본 것이 Freiburg에서 멀지 않은 Basel의 미술관이었는데, 내 기억으로는 그 미술관에 어떤 노인의 얼굴 그림이 있었다. 크지 않은 그림이었는데, 그 그림을 보는 순간 이상한 충격을 받았었다. 그 그림이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착각인지 감흥인지 모를 묘한 느낌이었다. 알고 보니 Rembrandt 자화상이었다. 그 뒤로 Rembrandt 그림을 좋아하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내가 그림이나 조각을 보고 좋아하는 기준이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지 여부가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가 찾는 렘브란트 자화상은 볼 수가 없었다.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걸까?’


그래도 미술관 마당에는 여전히 로댕의 깔레의 시민(Les bourgeois de Calais)’이 서 있어서 좋았다. 영국과 프랑스가 벌인 백년전쟁에서 영국 국왕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의 도버 해협 근처에 있는 도시 깔레를 포위 공격을 한지 1년 만에 겨우 항복을 받아낼 수 있었다. 오랫동안 버틴 깔레 시민에게 화가 난 영국 국왕이 깔레 시민 전원을 몰살하려고 했으나 주위의 간곡한 만류로 깔레 시민 중에 대표 6명이 자진해서 나오면 그들만 죽이고 나머지 시민은 살려주겠다고 했다. 이에 시장인 외스타슈 드 셍-피에르와 5명의 부유한 시민이 스스로 목숨을 희생하기로 하고, 왕이 말한 대로 목에 밧줄을 두르고 속옷 바람에 맨발로 영국 왕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때 왕비 필리파가 왕에게 저 시민들을 죽이면 뱃 속의 아이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 같다고 탄원하여 용감한 시민들의 목숨을 구해주었다고 한다. 정말로 6명의 시민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 통용되던 항복의 의식으로 그런 연기(?)를 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19세기에 민족주의가 팽배하면서 이 이야기는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실천한 영웅들의 모델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깔레 시가 19세기 말에 6인의 영웅을 기리기 위하여 로댕에게 조각을 의뢰하였는데, 정작 로댕은 영웅 여섯 명이 아니라 죽음의 공포와 희생할 책임의 갈등으로 고뇌하는 처참한 6인의 모습을 만들어 깔레 시를 실망시켰다고 한다. 하긴 로댕이 의뢰인을 실망시킨 것이 그 때 뿐이 아니었다. 위대한 문학가 발자끄 상을 주문받고는 얼핏 보면 거지왕초 꼴을 한 발자끄를 만들어 그 조각은 한 동안 창고 속에 쳐박혀 있기도 했다. 물론 후대에 눈을 뜬 사람들이 재평가를 했지만. 이번 기회에 그 여섯 시민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각기 다른 표정의 고뇌와 공포, 번민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낸 로댕의 천재성에 다시 감탄했다. 요새 축구 월드컵 중계를 보면서 골을 넣지 못한 공격수나 실수로 골을 먹은 수비수 표정들을 보면서 깔레의 시민들 표정을 떠올리곤 한다.


학회가 끝난 뒤에 딸네 식구들과 바람 쐬러 Luzern 부근의 Rigi 산에 올라갔다. Goldau에 주차를 하고 톱니바퀴기차를 타고 올라갔다. 1871년에 개통된 유럽 최초의 산악열차라고 했다. 올라가면서 보니 왼쪽으로 루체른 호수가 거의 전부 한 눈에 들어왔다. 1798미터 정상 가까운 곳에서 내려 걸어서 정상으로 갔다. 해는 눈부시게 비치지만 3월 초라서 그런지 그냥 서 있기가 힘들 정도로 매서운 칼바람이 불었다. 주위를 살펴보니 우리처럼 그냥 맨 손으로 올라와서 걸어만 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다들 스키나 썰매를 갖고 올라와서는 신나게 타고 내려갔다. 우리도 썰매를 갖고 왔으면 신나게들 탔을 테고, 나도 손자 녀석 부둥켜 안고 눈에서 뒹굴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아마 사위와 딸이 체력도 부실하고 복장도 불량한 늙은이를 생각해서 갖고 오지 않은 것 같은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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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원이 스위스에서 Matterhorn을 보는 것임을 알고 있는 아이들이 나를 태우고 Zermatt로 향했다. 드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계곡을 가다가 갑자기 기차 정거장 같은 곳으로 들어가더니 덜컹 뱀 같이 기다란 기차 위로 차를 몰았다. 자동차를 수 십대 싣고 터널로 산 속을 통과해 건너편으로 실어다 주는 기차였다. 산길로 차를 몰면 여러 시간 걸렸을 텐데 15분 만에 산을 통과하니 엄청 시간을 절약해 주는 문명의 이기였다. Furka 터널은 Realp에서 Oberwald까지 길이가 약 15.4km이다. 이 신기한 기차 체험을 할 때 손자 녀석은 이미 차 안에서 깊은 잠이 들어 보지를 못했다. 저녁 어스름에 Zermatt 아래 자동차가 갈 수 있는 마지막 마을 Täsch에 도착하여 숙소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기차를 타고 Zermatt로 올라갔다. 마을 구경을 잠시 한 뒤에 곤돌라를 타고 가파른 산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유럽에서 가장 높은(3,883미터) 케이블카 정거장인 Matterhorn glacier paradise까지 올라갔다. 거기서 Matterhorn이 가장 가까이 보이고 다른 알프스의 산들도 잘 보인다고 해서 올라간 것 같았는데, 눈보라가 쳐서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얼음동굴만 구경하고 내려 왔다.


오후에는 톱니바퀴기차를 타고 다른 방향인 Gornergrat로 올라갔다. 다행히 구름이 걷혀서 알프스 연봉은 제대로 볼 수 있었지만, 정작 보려고 한 Matterhorn은 대부분 구름에 가려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다시 밖에 나가 쳐다봐도 오른쪽 다리만 살짝 내 보일 뿐이었다. 식사 도중에 또 나가 보았더니 이번에는 오른쪽 어깨까지만 내보였다. 식사를 다 하고 나가 보아도 역시 목까지 내보일 듯 말 듯하더니 도로 허리까지 구름에 휩싸여 더 이상 볼 것을 기대할 수가 없었다. 식당 안에 진열해 놓은 세상에서 가장 큰 쵸코릿 마터호른, 4,478g’ 앞을 몇 차례 지나며 본 것으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는 없는 일, 그나마 Matterhorn 오른쪽의 알프스 연봉은 깨끗하게 보여 파노라마로 찍을 수 있음을 다행으로 여겼다. 허전한 마음을 뒤로 하고 Zermatt를 거쳐 Täsch로 내려와 차를 타고 귀갓길에 올랐다.

  

여행 다니는 내내 세 살 반 된 손자녀석은 나를 자기 옆에 앉지 못하게 했다. 할아버지는 앞에 앉아요~!” 했다. 처음에는 낯이 설어 그런 것 같았는데, 한참 친해 진 다음에도 계속 그랬다. 그것도 싱글싱글 웃으면서. 할아버지에게 장난을 치고 있었다. 한 번은 또 할아버지는 자기 옆이 아니라 앞에 앉으라고 하기에 사위가 하긴 앞자리가 더 편하다고 말해서 내가 뒤를 돌아보며 손자에게 고마워, danke schön~!” 했다. 그 때 이 녀석 반응이 ~?” 모두 폭소를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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