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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천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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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무분담의 변경으로 민사항소 재판부의 부장으로 보임을 받게 되면서,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두루 섭렵하여 취합한 천사부장이 되기 위한 행동요령은 다음과 같다.

1. 배석판사님들과 사이에서는 출, 퇴근 인사를 생략하는 한편 칼 퇴근을 하여 저녁 식사를 같이 할 기회 자체를 만들지 말고, 신건메모는 직접 작성하며, 조정사건은 부장이 직접 처리하되 복잡하고 어려운 사건일수록 조정으로 종국해서 작성할 판결문 수를 최소화할 것.

2. 법원 직원들과 사이에서는 정확한 시간계산을 토대로 한 적정한 기일지정과 신속한 재판진행으로 퇴근 시간 이전에 재판을 종료하고, 휴가 및 출장계획은 미리 공유하며, 분기에 1번씩 뮤지컬 감상, 야구장 단체 관람 등 기억에 남을 이벤트를 열어 줄 것.

그런데 실제 재판 업무를 수행하다 보니 재판장인 필자가 ‘천사’가 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상대방은 재판 당사자 본인들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파악해 본 재판 당사자들로부터 천사부장으로 칭송받기 위한 행동요령은 다음과 같다.

3. ① 관련 쟁점과 사실관계는 물론 재판 당사자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파악하여 정확한 재판을 해야 하고, ② 당사자들의 주장이나 증인신문을 친절하게 귀 기울여서 듣되 쟁점을 벗어나거나 비난조의 말다툼으로 나아가기 전에 적절하게 쟁점이나 본론으로 집중시켜 반대 당사자의 불만도 없도록 하며, ③ 유사하기만 할 뿐 미묘하지만 실질적이고도 중요한 차이로 인해 궁극적으로는 다른 사안임에도 유사한 내용에 대한 관련 대법원 판결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당사자의 주장을 일언지하에 가벼이 단칼에 배척하지 말고, ④ 어떠한 소송지휘도 하지 않은 채 당사자나 대리인들이 이끄는 대로 소송을 방치하여 쌍방 당사자 모두가 자신이 승소한다는 착각에 빠지도록 한 다음, 일방 당사자의 주장을 그 당사자의 주장 내용만을 근거로 채택하거나, 쌍방 당사자 어느 누구도 언급하지도 않았던 생소한 법리를 근거로 일방의 주장을 배척하여 타방 당사자가 불의타를 맞았다는 배신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 3가지 행동요령을 다시 살펴보니 천사부장 되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 같지만, 이 행동요령을 그대로 꼭 실천해 보겠다고 굳게 다짐해 본다.

 

박영호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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