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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하버드대 교수의 축사(祝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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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의과대학원 입학식장에서, 대학원장이 신입생들에게 축하의 말을 하면서 '26'이라는 숫자를 칠판에 적는다. 그리고 그 숫자의 의미에 대하여 신입생들에게 묻고, 신입생 중 아무도 답변하지 못하자, 이렇게 이야기 한다. “지구상에는 수천 가지의 질병이 있지만 의학적으로 치료법이 개발된 것은 26개뿐이다”, “나머지는 우리들의 숙제이다.” 소설(에릭 시걸 著, 닥터스)에 나오는 장면이기는 하지만,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이, 치료법을 확신할 수 없는 질병을 가진 많은 환자들을 온전히 치료하기 위하여는 환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꾸준히 치료법을 연구하여야 함을 강조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의사에게 ‘직업적인 겸손’을 강조한 매우 인상적인 축사(祝辭)이다.

2001년 봄, 필자는 부산지검 동부지청에서 검찰 시보로 근무하였다. 그 당시 지청장님께서 마련해 주신 점심 식사 자리에서, 당돌하게도 “훌륭한 검사가 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라고 여쭈어 보았다. 청장님께서는 허허 웃으시면서 두 가지 덕목을 말씀하셨다.

우선 ‘정의에 대한 신념’이었다. 복잡한 사건일수록, 실체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많은 자료를 접하게 된다. 어떤 것이 증거능력이 있고, 어떠한 것이 증거가치가 높은지를 살피는 꼼꼼함을 넘어, 무엇이 정의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혜안(慧眼)을 가져야 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거기에서도 더 나아가, 그러한 정의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소신까지 지녀야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말씀이셨다. 지금은 어떠한 의미인지 알지만, 당시 시보의 수준으로 이해하기에는 좀 어려운 말씀이셨던 것 같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바로 ‘겸손’이었다.

수사는 처벌 받게 될 사람으로부터 승복 받아야 하는 작업인데, 이는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할 때에만 가능하다는 말씀이셨다. 병원에서 하늘같아 보이는 의사 선생님들도 확신을 가지고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의 숫자가 불과 수 십 여개에 불과한 것처럼, 수사의 달인이라고 불리는 검사 역시 모든 분야에 정통하지는 않을 것이다. 관계자의 말을 경청하고 꾸준히 여러 분야에 대하여 더욱 정통해 지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측면에서 당시 청장님의 말씀에 다시 한 번 공감하게 된다.

필자 역시 수사를 하면서 사건의 실체가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달랐던 적이 꽤 많았다. 아니 처음부터 생각했던 대로 진행되는 사건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겸손과 배려'는 검사 뿐 아니라 ‘수사 업무를 하게 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직업적 덕목 중 하나일 것이다.

 

박하영 부장검사 (법무부 범죄예방 기획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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