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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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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미국 보스턴에 있는 존 F. 케네디 도서관 겸 박물관에 들른 적이 있다. 전시자료를 둘러보던 중 한쪽 벽면에 프린트된 사진 한 장을 만났다. 백악관의 집무실 앞 주랑 끝에 서 있는 대통령의 뒷모습을 찍은 흑백사진이었다. 그 큰 벽을 채운 사진이 하필이면 뒷모습이라니. 아마도 박물관 측은 누군가를 기억 속에 남기고 추억하게 하는 것은 그의 앞모습이 아니라 뒷모습이라고 여겼는지 모른다.

프랑스의 소설가 미셸 투르니에와 사진작가 에두아르 부바의 사진 에세이집 ‘뒷모습’은 아예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은 수십 장의 사진과 그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투르니에는 부바가 촬영한 사진 옆에 “뒤쪽이 진실이다”, “뒷모습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라고 적었다.

뒷모습은 앞모습과 달리 치장과 허세로써 위장하기 어렵다. 그래서 진실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사람의 진면목을 알고 싶다면 그의 앞모습뿐 아니라 뒷모습을 살펴보아야 하는 법이다.

때때로 내게 어떤 판사들의 뒷모습이 사진 속의 장면처럼 떠오른다.

그중 하나는 법정에 갈 때마다 법관 출입문 앞에 잠시 멈추어 기도를 드리던 판사의 뒷모습이다. 그 판사의 기도가 무엇이었는지 직접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재판이라는 엄중한 책무를 감당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염원하는 내용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다른 하나는 옆방에 근무하던 판사가 이어폰으로 무언가를 골똘히 듣고 앉아있던 구부정한 뒷모습이다. 그는 전날 자신이 진행했던 재판을 모두 녹음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듣고 있었다. "뭘 하고 있느냐"고 묻는 내게 그 판사는 웃으며 “하도 재판을 못해서 다시 들어보며 반성 중이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그것이 더 나은 재판을 하기 위한 그의 진지한 노력이었음을 감출 수는 없었다.

역사적 인물도 책에 실린 사진도 아니지만, 이 모두는 내가 아름답게 기억하는 동료 판사들의 뒷모습이다.

판사로 일하면서 어렵고 힘든 시기를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때 이런 동료들의 뒷모습을 떠올려 보는 것이 큰 힘이 된다. 그러면 마치 아름다운 그림을 보거나 아름다운 음악을 들은 것처럼 마음이 정화되고 다시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긴다.

 

김봉원 고법판사 (서울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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