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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청년시대

[지금은 청년시대] 내 아이를 대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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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휴를 맞이하여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아내도 무척 즐거워하였지만 아들이 특히 좋아했다. 늘 일에 피곤한 아빠의 모습만 보여준 것 같아 미안했는데 하루 종일 아들에게 집중할 수 있어 좋았고, 그 덕분인지 아들은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하여 처음으로 아내와의 대결(?)에서 첫 승을 해보기도 했다.

이에 나는 한껏 의기양양하여, 전국의 모든 아빠들을 위하여, 이 지면을 빌어 아내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나의 비법을 공개해볼까 한다.

첫 번째 비법은 아이의 얘기를 주의 깊게 듣고, 질문으로 맞장구를 쳐주는 것이다. 우리 아이는 아빠 머리를 닮아 또래에 비해 말이 좀 느린 편이다. 그래서인지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를 때가 많다. 평소 피곤할 때는 아이의 얘기에 ‘그래, 그래’ 이런 식으로 반응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우리 아이는 그러한 반응에도 신나서 얘기할 때가 대부분이었지만 순간 순간마다 ‘아빠 ~~해야지~’라며 주위를 환기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 중에는 아이의 얘기를 흘려듣지 않고, 아이가 말을 정확히 정리하지 못하면 바른 내용으로 정리해서 반문하였다.

아들이 ‘커비가 엔드 닐을 쓰러뜨렸는데, 또 쓰러뜨렸어.’라고 말하는 걸, ‘커비가 엔드 닐을 쓰러뜨렸는데 엔드 닐이 다시 살아나서 또 쓰러뜨렸다고?’ 이런 식으로. 그러니 대화는 자연히 이어졌고 아이는 신이 나서 얘기를 계속하였으며 우리는 보다 더 친해졌다.

두 번째 비법은 아이가 만족할 때까지 노는 것이다. 평소의 나는 아무래도 일에 피곤해서 아이랑 대충 놀다가 적당한 시간이 되면 ‘애들은 일찍 자야 한다.’는 핑계로 아이를 재우기 일쑤였다. 참으로 부족한 아빠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이의 기대보다 좀 더 놀자고 했다. 그 역할의 6할 가량은 ‘닌텐도 스위치’가 했지만(여행 중의 일이었으니 게임에만 국한하여 얘기를 한 것은 아니다) 아이가 게임을 2판하고 싶다고 하면, 아빠가 3판 해주겠다고 한다거나, 아이가 이 시각까지 게임을 하고 싶다고 하면, 거기에 10분을 더 해서 해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하여 아이가 부족함을 느끼지 않도록 노력했다.

세 번째 비법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아이와의 약속은, 때로는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하여 하는 경우가 많다. 부족한 나는 그러하였다. 아이가 어디를 가기 싫다고 보채면, 어디를 가면 아이가 좋아할만한 당근을 제시하고, 나중에는 그 당근이 아이에게 좋지 않다는 핑계로 약속을 어겼다. 착한 거짓말이라고 자기 설득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는 그러하지 아니하였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약속하면 지켰다. 2박 3일의 짧은 여행이라 이것이 가능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러하였다.

아이가 좀 커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 결과, 여행의 마지막 날에 아이는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했고, 기차를 타거나 식당에 가면 늘 엄마를 옆에 앉게 했는데, 이번에는 아빠를 옆에 앉게 했다. 아이와 정말 친해진 여행이었고, 그래서 마치고 싶지 않은 여행이었다.

그럼에도 언제나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때가 있는 법이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일이 산더미다. 사실 시간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급하지 않은 건들은 여행 뒤로 미룬 탓도 있다. 그래서 우선 처리할 사건부터 정리를 하였는데, 정리를 하다 보니 사건 사건에는 다 내 아들이 있었다. 물론 은유하여 그렇게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사건은 본래 사건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변호사가 접하는 사건에는 자기 얘기를 주의 깊게 듣고, 내가 내용을 이해하여 반문하고 내용을 정리해주길 바라는 사람, 본인이 바라는 바가 만족될 때까지 내가 사건에 힘쓰길 바라는 사람, 사건과 직접 관계가 없더라도 내가 약속한 것은 어떠한 식으로든 답을 줬으면 하는 사람.. 그 사람들이 내가 접하는 사건에 있는 사람들이다.

물론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과정 중에도 답을 얻길 바란다. 내 아들이 내게 원하는 것이나, 그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것이나 결국은 같은 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런 것은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다. 그렇기에 나도 여행 전부터 고민한 사건도 있고, 과정 자체에서 힘든 사건도 있으며, 어쩌면 의뢰인보다 더 걱정하는 사건도 있다. 다만 내가 스트레스 받기 싫어서, 때로는 내가 사건에 너무 몰입하면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핑계로, 의뢰인을 말 그대로 의뢰인으로서 대한 면도 있는 것 같다.

감정의 과잉은 일을 망칠 수 있지만 의뢰인에게 감정이입하는 순간에도 아들처럼 대해본 적은 없다. 사실 당연하다. 대부분은 나보다 나이 많은 어른이시고, 나야 법이나 절차만 조금 더 알 뿐 인생 경험은 부족한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의뢰인을 아들처럼 대하면 어떨까. 아내와의 대결에서뿐만 아니라 사건 관계자들과의 대결에서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오늘도 열심히 밀린 일을 처리했다.

부족한 내가 바쁜 요즘을 보낼 수 있는 것도, 사족이지만 이번에 내 집(정확히는 은행 집이다)도 장만하는 것도, 다 찾아와주셔서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의뢰인을 아들처럼.. 상상하긴 힘들지만 그래도 성심성의껏 대하려고 노력해야겠다고 새삼 다짐을 해본다. 아들과의 여행이 참 좋았으므로, (인과관계는 없지만) 의뢰인과의 여정도 다 좋을 것이라고 희망해본다.

 

김연기 변호사 (법률사무소 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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