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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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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나를 선임하는 보수로 12억원을 지급한다면 변호를 맡아야 할까.’ 이런 순진한 고민을 내가 했다. 사법연수원 수료를 앞두고 법원에서 시보를 할 때 필수적으로 국선변호를 2건 맡게 되는데 그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왜 하필이면 12억원인지는 잘 모른다. 아마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정말 큰돈의 단위였던 것 같다. 시보 교육을 담당한 판사와 동기는 나의 고민을 듣고 웃으며 맡아야 한다고 대답해주었다.

국선변호인으로서 그때 내가 변호한 피고인은 직장 동료인 여성들이 이용하는 화장실 변기 안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여 촬영하고 결과물을 인터넷에 유포한 삼십대의 남성이었다. 검찰이 제시한 증거기록 중 사진은 흐릿했고 피해자들의 신체 부위만 드러날 뿐 인적사항을 식별할 수 있는 얼굴 등은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변호인으로서 사진의 부정확함을 주장하자, 시보 교육 담당 판사였던 재판장은, 피해여성과 피고인은 사진만 보고 옷가지 등을 통하여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증거가 명백한 사안에서 나는 객관성을 잃어버렸다. 피고인에게 유죄판결이 선고되었고, 구속상태였던 피고인은 곧바로 항소를 제기했다.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의 저서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는 내가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한 후 호기롭게 잡아 든 책이다. 1964년에 뮌헨에서 태어난 저자는 1994년부터 베를린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는데, 할아버지가 나치 정권에 협력한 전력이 있어 그 죄과를 씻기 위해 변호사가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말한다. 첫째, 검찰의 증거가 유죄 인정에 충분한가를 살피고, 둘째, 유죄를 피할 수 없다면 양형에 관한 주장을 하면서 비로소 도덕이 개입하게 된다. 그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어떤 경험을 했으며, 어떤 문제를 갖고 있었는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증거 없이 '극악한 범죄인'이 될 수는 없다. 그게 가능해진다면 여론재판으로 법치주의는 멀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민이다. 위 국선변호 사건의 피고인은 나의 첫 의뢰인인 셈이었는데, 그 변호를 마친 후 나에게는 한 가지 원칙이 생겼다. 성범죄 피고 사건의 변호는 맡지 않는다는 내 나름의 원칙….

 

홍지혜 변호사 (법무법인 제이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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