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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법대는 trench(참호)가 아니라 bench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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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벌어지고 있는 법원 내부의 사태는 필자로 하여금 도무지 어떠한 글도 쓰기 힘들 정도로 마음과 몸을 아프게 만들었다. 필자는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가 내 삶의 10가지 철학 중 하나일 정도로 ‘법관’이라는 직업이 주는 가오를 소중히 여겨 왔는데(서울중앙지방법원 법원칼럼 2017. 5. 1.자 참고), 근래의 사태로 인하여 필자를 비롯한 주변 판사들의 가오는 땅 바닥에 떨어진 듯하다. 법관으로서 가오 하나만을 근거로 법관 경력 기간 동안 가족들과의 행복한 시간을 희생해가면서 재판 기록과 사건 이면에 숨어 있는 진실과 묵묵히 씨름하였던 대부분의 평범한 법관들의 허망함과 허탈함은 도대체 누구로부터 어디에서 어떻게 보상받으라는 것인지 참으로 안타깝다. 


영어로는 판사가 주재하는 재판을 bench trial이라고 하고, 판사석 즉 법대를 the bench라고 한다. bench는 원래 공원에 설치된 긴 의자로 산책하는 사람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자리를 의미하는 점에 비추어 보면, 법대를 bench라고 하는 것은 법대가 긴 의자처럼 생겨서이기도 하지만, 재판받는 사람이나 재판을 하는 법관 모두가 마지막으로 기대어 쉴 수 있고 의존할 수 있는 장소가 되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아닐까 혼자서 생각해 본다. 

 

재판에 대한 신뢰는 국민들이 주는 것이지만, 재판에 대한 신뢰 회복을 위하여 가장 기초가 되고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현재 그 재판을 주재하면서 진행하는 법관들이 ‘법대에서’라도 자신이 판사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개개 판사들 전원이 ‘법대에서’ 가장 자존감과 보람을 느낄 수 있어서, 법대야말로 판사들이나 국민들 모두가 심리적으로 가장 안정을 취할 수 있는 bench(공원의)가 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인데, 지금 상황은 법대나 법원 자체가 bench가 아닌 trench(전쟁터의 참호)처럼 느껴져서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렇지만 이런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더 눈물이 날 것 같아, 필자가 비록 전체 법관들을 대표할 자격은 없지만 이 지면을 빌려서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 "국민들이 기대 쉴 수 있고 믿을 수 있어야 할 법대(bench)를 전쟁터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trench로 만들어 버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 믿어 주시고, 기다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박영호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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