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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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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법원을 견학하러 온 학생들과 대화하는 경우가 있다. 그중 어느 대학생이 던졌던 질문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처음 판사라는 직업을 시작하실 때 어떤 마음이셨나요?”

그 질문은 마치 내게 어떠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판사라는 직업을 시작했는지, 아직도 그것을 잘 지켜가고 있는지 묻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가볍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우리의 직업 생활은 ‘밥벌이’와 ‘소명’ 사이 어디쯤엔가 놓여 있다. 대개 직업을 시작할 때의 마음은 ‘소명’ 쪽에 가까워서 미래를 향해 여러 가지 다짐과 약속을 하기 마련이다. 그 후로 오랫동안 그 다짐과 약속을 꿋꿋이 지켜가는 예도 있겠지만, 부지불식중에 ‘소명’과 멀찌감치 떨어져 ‘밥벌이’ 근처에 머물러 있는 상황을 발견하기도 한다.

‘소명’이란 본래 종교적인 관점에서 신으로부터 부름(calling)을 받았다는 의미이지만, 세속적인 맥락에서 보면 직업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부여했던 다짐이나 약속과 마주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수 이승환이 불렀던 ‘첫날의 약속’이라는 노래는 그러한 소명을 상기시키는 내용이다. “첫 개업식 날 친절봉사 외쳐대면서 맛도 좋더니 / 변하더군, 흐지부지 / 사랑이 식듯이 별 가책도 없이 / 원래 뭐 그런 거 아니냐더군”하며 시작하는 노래는 ‘사랑이 시작되던 날처럼 요동쳐대던 처음의 마음’을 기억하자고 한다.

그렇게 요동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원하던 직업을 시작할 때의 마음속에는 저마다 간직하고 지키려 했던 삶의 정수 같은 것이 담겨 있다. 그래서 처음의 마음을 잊지 않는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소중히 지켜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문제는 처음의 마음이란 것이 애써 기억하고 지키려 노력하지 않는 순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기가 쉽다는 점이다.

직업만의 문제도 아니다. 무슨 일이든 누구와의 관계든 지키고 싶었던 첫날의 약속이 있었을 것이다. 이승환의 노래 역시 그렇게 이어진다. “아프고 난 뒤 시작했던 아침 달리기 계속하나요 / 뽑아주셔서 고맙다던 그 아저씨들 뭐 하시나요 / 어려웠을 적 맹세했던 그 약속들을 지켜가나요 / 월요일 아침 고쳐 매던 구두끈은 어때요.”

 

김봉원 고법판사 (서울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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