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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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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도 그린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천재적 과학자 겸 예술가인 레오나드로 다빈치가 한 말이다. 오늘 현대사회는 레오나드로 다빈치와 같은 천재적 재능을 타고 나지 않더라도 여러 분야에 대한 지식과 능력을 고루 갖춘 멀티플레이어가 아니고서는 섣불리 자격사라고 소개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우리 법무사에게 "나는 등기도 한다"라는 말이 어울릴까 생각해 보았다.

해방 후 군정법령에 의해 공포된 최초의 사법서사법은 현행 법무사법과 같은 형태로 ‘심리원, 검찰청, 기타 사법기관에 제출할 서류를 작성함을 업무로 한다’고 규정했다. 그런 면에서 1990년 ‘법무사’라는 명칭을 채택한 것은 이 제도가 가진 본래의 성격을 함축적으로 잘 보여준다. ‘법무(法務)’는 법률사무 전반을 통칭하는 일반명사이기 때문에 등기·호적 업무에 천착한 서민의 법률가와는 전혀 기획 의도가 다르다. 그런데도 우리 법무사는 아직도 사법서사로서 해방 직후 문맹률이 높던 그 어두운 시대에 남아 있는 것 같다.

과거 법조인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시기에 법무사가 국민의 사법접근성 보장과 등기·호적 업무를 통한 사법질서 안정에 지대한 공헌을 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찬사는 법조전문가로서 듣기에는 왠지 이상하다. 등기·호적 업무는 법무사만의 전속업무는 아니었고 그 분야에 변호사도 전문자격사임에 의론이 없다. 단지 경험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그 분야의 전문가로 단정하기는 무리가 있다.

오늘날 제도적 법무사는 변호사와 같은 법무영역에서 사건을 포괄위임방식으로 할 것인지, 분할위임방식으로 할 것인지의 선택 가능한 옵션으로 기능해야 한다. 그래야만 당초 법무사를 등기·호적 사무에 국한하려 하지 않았던 입법자의 의사에 부합할 것이다.

급변하는 IT환경에도 변화를 거부하고 여전히 서민의 법률가만을 고집할 경우, 통행세를 내지 않으려는 똑똑한 소비자들에 의해 도태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그런 면에서, 대언인과 대서인으로 변호사와 훌륭하게 법무를 양분하여 분담하고 있는 일본 사법서사에 비하면 우리나라 법무사는 과분한 명칭이 주어진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이성진 법무사 (울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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