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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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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오전 마지막 사건이 진행된 법정에는 다소 불안한 표정의 16세 소녀 A와 그녀의 변호인 밖에 보이지 않았다. 

 

혼자 왔냐는 질문에 변호인이 대신 대답했다. A의 아버지가 법정 밖에 있는데, 딸에게 부담될까봐 법정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변론을 종결하면서 A의 아버지를 법정에 들어오게 했다. A보다 더 긴장한 모습이었다. 

 

A의 아버지는, 자신의 딸이 가출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일, 부부가 딸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던 일, 성매매를 하고 타인 명의로 조사받은 사실을 알고 충격 받았던 일, A가 집으로 돌아온 뒤 서로 잊기 위해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는 일 등 가슴 저미는 부모의 아픈 심정을 이미 탄원서에 적어 제출했었다. 하지만 법정에 들어온 A의 아버지는 담담히 다 자신의 잘못이라고만 말했다.

즉일 선고까지 마친 며칠 뒤 A의 아버지가 개인적인 편지를 보내왔었는데, 얼마 전 정리하지 못해 갖고 있던 자료들 틈에서 그 편지를 찾았다. 그 편지 내용 중 ‘집을 나가서 찾기까지, 찾고 나서 사건의 내용을 알게 될 때까지, 사건을 알고 해결 될 때까지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고 마음이 많이 아팠는데, 모두 치유가 된 것 같다’는 문구가 필자에게 위로로 다가온다. 가끔 변호사가 될 제자들에게 ‘의뢰인에게 고용된 총잡이가 아니라 상황을 회복시키는 치유자가 되길 바란다’는 얘기를 하곤 했는데, 판사인 내게는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고 그동안 사건처리에만 너무 몰두하였던 탓일까?

벌써 10년 가까이 지나, 당시 재판을 진행하면서 A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법정에서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다만, 안타까운 마음으로, 시간에 쫓기지 않고, 다소 장황하지만 훈계와 당부가 덧붙여진 판결 선고를 하였던 기억이 남아 있다. 편지를 찬찬히 다시 읽다 보니, 당시 나이 어린 A에게 차갑고 엄한 법정만 보여준 것 같진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어떻게 당사자들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좋은 재판’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이 생긴다. 그나저나 이제는 아버지를 이해하며 아버지와 같은 일을 하고 싶다던 A는 지금 꿈을 이루어 가고 있을까?

 

권성수 교수 (사법연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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