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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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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변호사회의 생명가족윤리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생명·가족·윤리,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다. 삶은 곧 생명의 문제이자 죽음의 문제이다. 세상 사람들이 요즘에는 죽음에도 관심이 많아지고 이른바 웰다잉법이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중국인보다 중국을 더 사랑했다는 ‘대지’의 작가 펄 벅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생명의 가치에 대하여 깊이 고민한 작가이다. 그녀는 생후 3개월만에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중국에 갔다. 농경제학자인 남편과 사이에 자라지 않는 아이가 있었다. 사람이란 존재는 무언가에 쓸모가 있어야만 할까. 그렇지 못한 삶은 가치가 없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의 고통, 절망과 방황을 ‘자라지 않는 아이(The CHILD who never grew)’라는 작품에서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삶의 여정을 거치며 펄 벅은 작가가 되었고, 어린 딸은 소설 ‘대지’에서 왕룽의 백치 딸로 그려진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슬픔이 있다. 달랠 수 있는 슬픔과 달래지지 않는 슬픔. 달랠 수 있는 슬픔은 살면서 마음속에 묻고 잊을 수 있는 슬픔이지만, 달랠 수 없는 슬픔은 삶을 바꾸어 놓으며 슬픔 그 자체가 삶이 되기도 한다. 사라지는 슬픔은 달랠 수 있지만 안고 살아가야 하는 슬픔은 영원히 달래지지 않는다.’

사람은 왜 존엄한 것일까. 생각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일까. 현실의 인간은 때론 오만하고 반성할 줄 모르고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 그것을 재단하고 평가하는 우리 자신도 오류를 범하며 살아간다. 그런데도 인간은 인간의 존엄을 얘기하고 생명의 가치를 말한다.

펄 벅은 어떤 삶이 가치가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삶이든지 간에 삶의 권리가 있고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는 깨우침을 얻는다. 삶은 그것이 크고 작든 누군가의 삶에, 그리고 세상에 영향을 준다. 그 자체로 존엄한 인간은 스스로 생명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는 존재가 아닐까. 나에게 펄 벅은 동양을 사랑한 작가로 늘 기억된다.

 

전현정 변호사 (법무법인 KC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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