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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ㄴㄴ'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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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한테는 만졌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아니라는 건가요?” 강제추행 사건 피고인에게 묻자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단다. 빤한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에 채팅 기록을 스크린에 띄우고 다그쳤다. 언성도 높아졌다. “여기, 친구가 물으니까 본인이 ‘ㄴㄴ’썼네요. ‘네네’란 거잖아요!” 순간 법정이 조용해졌다. 피고인은 이것도 모르냐는 눈빛으로 말했다. “판사님, 그거 ‘노노’인데요.” 민망함, 미안함, 다행스러움과 함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미리 알려 주셔야 알죠.’

판사가 모르는 건 초성체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전문용어도 모르기는 매한가지다. 지금 담당하는 행정사건 기록 곳곳에도 처음 들어보는 용어들이 가득하다. 사건에서 판사가 자주 접하는 것은 법령이지 그 사건 속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산업재해를 유발한다는 각종 화학물질을 주기율표도 잊은 지 오래인 판사가 알 리 없다. 국가 계약에 관한 제재 사건에 나오는 ○○ 연구 개발 사업이나 ○○ 납품 계약에 관한 시약이나 윤활유의 이름은 들어 본 적도 없다. 어떻게 쓰이는지 모르는 건 당연하다. 하위 법령이나 매뉴얼에 설명이 되어 있는 경우도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사회를 모두 담을 수 있을 리 없으니 더욱 그렇다. 하나하나 설명을 들어야 알 수 있다.

대리인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시면 좋겠다. 보통 설명을 요구하긴 하지만, 뭘 모르는지도 잘 몰라 물어보기 쉽지 않을 때도 있다. 자칫 법정의 권위가 우스워질까 걱정도 된다. 혼자 논문을 연구하고 인터넷을 검색해서 해결하기도 어렵다. 사건 초기 적절한 시점에 효과적으로 알려 주시면 좋겠다. 물론,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의뢰인의 말을 그대로 옮겨놓기만 하거나 감정 결과를 원용하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각주로, 별지로 주요 용어도 정리해 주시고 제품 사진이라도 제출하시면서, 변호사의 말로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주어진 시간에, 모르는 것 투성이인 판사에게 잘 설명하는 일이야말로 법정에 선 대리인의 몫이 아닐까 싶다. 변호사들을 상대로 한 칼럼에서 “판사들은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라”고 조언하신 미국 Posner 판사님의 말씀을 떠올려 본다.

 

한지형 판사 (서울행정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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