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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선진국형 사법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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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나라는 선진국으로 도약하느냐 여부에 관한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한국전쟁과 분단이라는 아픔 속에서도 고도의 경제성장을 달성해왔다. 그 과정에서 극도의 효율성과 성장 우선주의를 취하면서 발생한 양극화와 갈등 해결 시스템의 부재는 우리가 선진국으로 나아가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가난한 국가에서 어느 정도 성장을 이루는 데는 소수 엘리트에 의한 효율적 리더십이 유용하지만 더 나아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데에는 민주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이 필요하다.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된 독재국가가 현명한 지도자를 만나면 단기간에 성장을 이룰 수 있지만, 긴 시간을 따라가 보면 다수가 참여하는 민주주의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인류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민주주의는 천천히 한걸음씩 나아가지만 모두 함께 가기 때문에 독재보다 강력한 운영 시스템이다.

이러한 민주적 방식은 입법, 행정뿐만 아니라 사법의 영역에서도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볼 때 과거 사법권의 의사결정구조는 정치권력에 의한 통제 가능성이 강하였다. 이에 따라 내부적으로도 최고 사법기관의 장에게 의사결정권이 집중되어 사법부 자체가 수직적·관료적으로 운영된 예가 많았다. 하지만 오늘날 거의 모든 선진국은 사법권의 의사결정구조를 민주주의 원칙에 맞게 구성하고 있다(헌법 새로 만들기, 이헌환).

사법부가 국민을 위해 기여해야 하는 영역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국민의 일상적인 분쟁 영역에서 올바른 재판 진행으로 합리적 결론을 도출하는 영역이다. 이 영역은 법관 개인의 성의와 자질이 좋은 재판을 위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또 하나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제에 관하여 헌법과 법치국가원리에 부합하게 규범을 해석하고 기준을 설정하는 역할이다. 이를 올바로 하기 위해서는 선진국들처럼 사법권 내부의 의사결정구조 자체가 민주주의의 원리에 부합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사법권 내부의 의사결정은 각종 사법기구의 설치 및 운영, 법관의 임명, 보직, 전보, 징계 등 사법권행사의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 구체적 재판에 있어서 합의부의 운영방식 역시 대등한 합의부원들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실질적인 토론을 거쳐 결론에 이르고 그에 따라 판결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까지 우리는 사법의 영역에서도 1인 또는 소수의 엘리트집단이 사법정책을 결정하면서 단기적 효율성을 추구하여왔다. 합의부 운영도 밀려오는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3인의 실질적 합의 대신 2인이 간이하게 합의하여 많은 사건을 빨리 처리하는 방식을 택해왔다. 그러나 경제규모의 성장과 정치 영역에서의 민주주의 확립으로 인해 더 이상 그러한 방식으로는 선진국 수준의 사법서비스를 제공하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 이제 우리 사법부 내부의 의사결정구조를 선진국형으로 개편하는 것이야말로 사법부가 국민을 위한 좋은 재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길이다.

민주적으로 운영되지 않는 사법부는 민주국가에 걸맞는 규범 설정기능을 수행할 수 없음이 자명하다.

 

이인석 고법판사 (대전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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