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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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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서울역은 국제역이었습니다. 서울역에서는 만주는 물론 중국, 러시아 나아가 유럽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1936년 6월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하려는 손기정, 남승룡 선수도 서울역에서 기차를 탔습니다. 평양, 신의주, 단둥, 펑텐, 하얼빈을 거친 후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갈아타고 약 2주간의 여정 끝에 베를린에 당도해서 같은 해 8월 9일 마라톤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따내게 됩니다.

철도는 조선이 대륙과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하는 상징이었습니다. 촘촘하게 깔린 철도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대륙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서울역을 통해 갈 수 있는 지역이 늘어나자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많이 모였고, 서울역은 모던뽀이들이 즐겨찾는 핫 플레이스가 되었습니다. 이상의 날개에서 '나'가 경성역에 있는 티 룸에서 커피를 마시는 장면처럼.

그러나 이러한 연결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 치열해지면서 수탈과 징용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만주와 중국은 물론 동남아까지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실어 나르던 수단도 바로 철도였습니다. 지난 2월 27일 서울시와 서울대 인권센터가 공개한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자료에는 1944년 9월 13일 밤 중국 운남성 텅충에서 일본군이 학살한 것으로 기록된 조선인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30여명의 영상이 담겨 있습니다. 이 할머니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고향이 어디인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향이 어디든 저 먼 운남성까지 끌려가려면 조선에서 그곳까지 연결된 철도를 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70년이 지나서 다시 철도가 대륙과 연결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 철도를 타고 고향을 떠났다가 아직 돌아오지 못한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비록 그 혼백이라도 귀향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합니다. 한국, 중국, 일본의 정상이 오랜만에 만났고, 이제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만리타향에 잠들어 있는 피해자들의 유해 발굴 및 송환을 위한 협력도 가시화되기를 바랍니다. 만주든, 러시아든, 중국이든, 버마든, 더 멀리 남양군도든 비록 떠밀려 갔지만 낯익은 노래, 낯익은 향기가 있는 그곳으로 지금이라도 돌아오셨으면 합니다.

 

석근배 변호사 (법무법인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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