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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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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의 단편소설 ‘봄밤’의 주인공이 톨스토이의 '부활'을 읽던 중 ‘노보드보로프라는 혁명가는 남보다 이지력(그의 분자)은 뛰어나지만 자만심(그의 분모) 또한 강해서 결국 별 쓸모없는 인간이다’라는 대목에서 문득 떠오른 생각을 말한다.

“이 비유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시킬 수 있을 것 같아. 분자에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놓고 분모에 그 사람의 나쁜 점을 놓으면 그 사람의 값이 나오는 식이지.”

실제로도 우리가 다른 사람을 평가해온 방식이 이런 식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분자에 그 사람이 남보다 우월하게 가진 것들, 이를테면 사회적 지위와 능력, 경제적 부, 권력, 학벌 등을 놓고, 분모에 그 사람의 인격적 결함을 놓아 그 사람의 값을 매긴다. 이때 1보다 큰 값이 되면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러한 분수식은 일종의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가진 것이 없어서 분자가 작은 경우 분모가 조금이라도 커지면 그 사람의 값은 쉽게 1보다 작아진다. 반면 분자가 큰 사람은 그 덕분에 인격적 결함이 어느 정도 늘어나더라도 여전히 1보다 큰 값이어서 부정적인 평가를 피할 수 있다. 분모의 절댓값이 더 큰데도 비난을 피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사회적 지위가 높고 능력을 인정받던 사람이 어느 날 추문이나 비리, 권력 남용, 약자에 대한 횡포와 같은 잘못으로 크게 비난받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가 힘겹게 쌓아온 분자를 고려하면 비난의 정도가 지나치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우리 사회가 분자의 크기로만 사람을 평가하던 오랜 미혹에서 벗어나 분모의 절댓값에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사실 우리 모두 분자의 크기만 바라보며 전력 질주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사이 분모에 대해서 고백하고, 의논하며, 조언과 충고를 나누는 일에는 주저하고 서툴렀다. 분자를 향한 분별없는 욕망이 분모마저 키우고 있을 때에도 애써 그 사실을 외면해왔는지 모른다.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오오 봄이여” “절제여”

김수영의 시 ‘봄밤’의 한 구절이다.

날이 저물어 한낮의 화려했던 꽃잎들이 사라진 봄밤에 홀로 헤아려 본다. 나의 사람값은 얼마인가. 내 분모의 절댓값은 얼마인가.

 

김봉원 고법판사 (서울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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