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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판사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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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들은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법정에서 표정 변화도 별로 없고 무슨 말을 해도 맞장구를 쳐 주지 않아서 그렇단다. 무엇보다, 최고의 공감 표현은 함께 울어주는 것이라는데 법대에 앉은 판사들은 여간해선 눈물을 보이지 않으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눈물 섞인 슬픈 사정을 듣고 나서도 그저 간단한 위로의 말을 건넬 뿐 눈시울을 붉히는 일은 많지 않다. 오히려 “이해는 하지만 동의한다는 뜻은 아닙니다”라는 말로 애써 선을 긋기 일쑤다.

어린 시절부터 산타할아버지 선물을 못 받는 ‘우는 아이’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태어날 때를 제외하고는 부모가 돌아가셨거나 나라가 망했을 때만 울어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가르침 탓이기도 하겠다. 그러나 판사가 눈물을 보이기 꺼리는 이유는, 흐를 것 같은 눈물을 삼키는 이유는 그뿐만은 아니다. 감정에 휘둘리기보다는 냉정한 판단을 하겠다는 마음가짐, 심판자로서 공정해야 한다는, 공정하게 보여야 한다는 무게감 때문이다. 공감의 눈물이 자칫 괜한 오해를 부를 수 있고, 누군가에 대한 위로가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오늘의 눈물이 내일의 판단에 굴레가 될지 모른다는 조심스러움 때문이다.

아픈 사람에게 힘이 되는 눈물, 그러면서도 판사다운 눈물은 없는 것인지 고민해 본다. 재판을 시작할 무렵이나 한창 진행 중일 때가 아니라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고 선고를 할 무렵에는 굳이 냉정하게 보이려 애쓸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과하면 감성팔이가 되어 버릴 수 있으니 쉬운 일은 아니다. 냉정한 판결문 속, 엄숙한 한 마디 속에 따뜻한 눈물 한 방울 녹여 내는 정도가 적당하겠다. 선배 법관 중에는 판결 이유에서 피해자의 글을 인용하며 재판부의 안타까운 심정을 에둘러 전한다든지 선고를 마치고 평소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을 소개해 주는 분도 있었다. 무작정 따라 할 일은 아니지만 남의 일이라 넘겨버릴 것도 아니다 싶다. 진지하게 같이 고민해 보면 좋겠다. 심리 방식, 판결서 작성 방식뿐만 연구할 것이 아니라 판사의 눈물도 제대로 연구해 보자고 하면 너무 엉뚱한 생각일까?

 

한지형 판사 (서울행정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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