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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형벌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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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범죄에 대한 엄벌론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고 있는 듯하다. 엄벌을 통하여만 정의롭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구체적 사정을 고려해 선처를 주장하는 것은 뭔가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될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형벌이 응보를 통한 정의 구현을 넘어 실제로 범죄방지에도 효과가 있다고 보는 ‘제어효과가설(deterrence hypothesis)’이다. 그러나 미국 경제학자 에를리히(Isaac Ehrlich)가 통계기법을 활용하여 이 가설을 검증한 결과는 다른 결론을 제시한다. 범죄자가 검거되어 유죄판결을 받을 확률이 높아짐에 따라 범죄 발생률은 명백히 줄어드는 반면, 처벌을 강하게 하여도 범죄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명백한 자료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엄벌주의는 실제 범죄감소효과가 별로 없고 오히려 위험스런 범죄예비군을 확대 공급하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실제로 가장 많은 국민을 감옥에 보내 엄벌을 통한 정의구현이 가장 잘 이뤄질 것 같은 미국의 강력범죄 발생률이 우리나라의 약 10배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세종대왕께서는 “선왕들께서 형벌을 사용하신 까닭은, 형벌이 없어지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셔서이다”(세종실록 6년 8월 21일)라고 말씀하시어 형벌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범죄가 없는 안전한 세상을 위해 형벌을 사용하신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또한 “형을 올리고 내리는 적용에서 아주 작은 정상도 놓치지 말고 살펴야 할 것인데, 지금 법을 맡은 관리가 형을 적용할 때에 대개 무거운 쪽으로 하니, 내 심히 안타깝게 여기노라. 죄가 경한 듯도 하고 중한 듯도 하여 의심스러워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있는 경우면 가벼운 기준으로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고, 만약 실제 범정이 중한 편에 속한다고 하더라도 아무쪼록 철저히 법에 근거하여 형을 부과하도록 하라. 서경(書經)에 ‘조심하고, 조심하라. 형을 시행함에 조심하라’한 말은 내 항상 잊지 못하는 바이니 법을 맡은 관리들은 깊이 유념할 것이다.”(세종실록 7년 7월 19일)라고 교지를 내리셨으니 이는 오늘날 판사들에게도 해당하는 말씀이다.

판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판사가 가벼운 형을 선고하는 경우 여론과 피해자의 거센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이는 자칫 무거운 형을 선호하는 경향으로도 이어질 수도 있다.

대부분 판사들은 범죄자에게 형을 부과하면서도 범죄자를 증오하지 않고 교화하여 건전한 시민이 될 수 있도록 고민한다. 중한 형을 선고하는 경우에도 법에 명백히 근거하는지 신중하게 검토하며, 아주 작은 정상도 세심하게 살피어 형을 정하기 위해서 밤늦도록 고민하고 있다. 세종이 일찍이 관리가 형을 정할 때 무거운 쪽으로 선택하고 정의를 세운 양 안도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시기고, 형벌의 목적은 처벌 그자체가 아니니 형벌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면서 신중히 형을 정하라 하셨다. 이러한 세종의 말씀을 충실히 따르는 판사들의 형이 다소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그러한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진지한 고민도 함께 해주시면 좋겠다.

 

이인석 고법판사 (대전고법)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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