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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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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처럼 해주세요.” 의뢰인에게서 참 많이 듣는 말인데, 들을 때마다 이상하다. 웃으면서 “제 일이 맞는데요, 제가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앞으로 많이 도와주셔야 합니다”라고 답변하곤 한다.

환자의 몸에 생긴 병증을 치료하면서 내 몸이 아니니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의사가 있을까. 재판기록을 넘기며 내가 겪은 일이 아니니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판사가 있을까.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남 일인데 그 때문에 저녁이 있는 삶과 주말을 반납하며 워라벨 따위 호사로 여길 리 없다.

‘내 일처럼’이라는 의뢰인의 당부가 늘 어색하던 중, 내가 대리인에 불과하단 걸 깨달았다. 주장이 이유 없어 승소할 여지가 보이지 않을 때 제소 자체를 반려해야 할 직업적 양심과 책임이 있는 것처럼, 다투어봄 직하고, 다투어야만 하는 사안에서 의뢰인에게 불리한 주장은 설령 의뢰인이 강력히 원한다 해도, 하지 않아야 할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예컨대 기존의 모든 합리적인 주장의 힘을 빼놓을 엉뚱한 증거를 제출하라거나 특별한 이유 없이 재판부를 기피하겠다는 의뢰인의 요청을 들어줄 수는 없다. 내가 담당인 이상 그런 변론은 죽어도 못한다고 버티다 결국 사임을 가장한 해임을 당하였다.

얼마 전 동료들과의 모임에서 변호사 일에 관한 자조 섞인 농담을 주고받았다. 변호사의 일은 도급이다, 고용이다, 이를 두고 설왕설래 했다. 그런데 처음 변호사 일을 시작하였던 신입시절, 선배의 말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던 때 법조 30년 선배인 대표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학식과 덕망을 갖춘 사람에게 현명한 대변을 부탁하며 송사를 맡긴 것이 변호사의 기원이다”라는 것이다. 변호사의 일은 특별한 신뢰관계가 전제되어 있는 위임이다.

지난주에 한 사건이 종결됐다. 늘상 의뢰인에게 재판에 가급적 참석하시라 당부를 드리는데 마지막 기일에 역시 의뢰인이 동행했다. 재판을 마치고 나와 법정 밖 복도에서 인사를 나누면서 나는 "저를 너무 잘 도와주셔서 제가 일하기가 한결 수월했습니다"라고 했다. 의뢰인은 "저야 제 재판이니까요"라고 했다. 결과가 어떨지 묻는 의뢰인에게 나는 "함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려보자"고 했다. 한 달여 앞의 선고기일에 직접 나가야겠다.

 

홍지혜 변호사 (법무법인 제이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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