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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사법제도의 운영과 법령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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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절차에 관한 한 대법원은 법률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규칙을 제정할 수 있음은 헌법(제108조)이 선언하고 있는 바와 같다.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말과 법률의 범위 내라는 말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법률에 저촉되는지 여부는 법률의 입법취지와 규정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해석할 일이므로 단순히 법률상 명문에 반하지 않는다고 하여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보는 견해는 결코 설득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예컨대 민사집행절차에서 항고법원 등의 재판에 관한 재항고의 사유 및 절차에 관하여 민사집행법에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고 하여 민사집행규칙(제14조의2)을 신설하여 규정하고 있다. 형사소송절차에서도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이 그 대상사건을 합의사건으로 하고 있는데, 규칙(제3조의2)은 단독사건이라도 피의자의 의사를 확인하여 국민참여재판을 희망하는 경우 재정합의결정을 함으로써 합의사건으로 만들어 국민참여재판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문제는 국회에서 제·개정한 법률을 대법원이 규칙제정권을 행사하여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입법의도와 달리 이를 축소·확대하는 경우까지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볼 것인지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대법원 규칙도 아닌 대법원 예규에서조차 버젓이 국민의 권리·의무에 관한 법규범적 규정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예규는 업무처리지침으로서 실무 가이드라인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률이나 규칙에서 정할 사항을 예규에서 정하는 것은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예컨대 가압류신청 시 신청서와 함께 진술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진술서를 제출하지 않는다든지 거짓으로 진술한 경우 보정명령 없이 신청을 기각할 수 있도록 하는 재판예규(보전처분 신청사건의 사무처리요령) 역시 두말할 나위 없이 잘못된 것인데도 여전히 그대로 있다. 한편 재판예규인 ‘국민참여재판의 접수 및 처리에 관한 예규’(제44조)에서는 단독사건에서 피의자가 참여재판을 희망하는지 의사 확인을 필수적으로 하여야 할 사건과 임의적으로 할 수 있는 사건을 구별하여 그 기준을 정하고 있기도 하다.

법률에 의하여 제도를 설계하더라도 실제 제도의 운용에서 규칙이나 심지어 예규를 통하여 변형을 초래한다면 이는 국민의 진정한 의사가 제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조용하지만 무게감 있게 진행되는 사법개혁에서 그 실체적 내용 못지않게 이를 어떻게 입법화할 것인지 등 절차적 내용도 섬세하게 접근하여 논의할 필요가 있다. 형식이 깔끔하고 가지런하지 않는데도 내용이 알찬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음은 공들여 만든 제도에서도 흔하게 경험해 왔다. 사법제도의 진정한 변화를 위해 서두르지 않고 꼼꼼하게 챙기는 모습을 국민이 눈여겨보고자 한다.

 

김홍엽 변호사 (법무법인 충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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