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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경청과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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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들은 대체로 남의 말을 많이 들어 주어야 하는 직업이다. 판사는 법정에서 검사와 변호인, 피고인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어야 하고, 민사분쟁의 원고와 피고로부터 정리되지 않은 주장을 참을성 있게 들어야 한다. 검사 역시 수사과정에서 사건 관계자들로부터 끈기있게 들어야 무엇이 사실인지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의뢰인으로부터 가급적 많은 이야기를 들어야 변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그런데 남의 말을 듣는 것은 쉽지 않다. 경청, 즉 귀 기울여 듣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나이가 들면 내 이야기만 많아지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게 된다. 그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나이가 들면 세상살이 경험에서 나오는 '오만'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름대로 세상 살면서 많이 겪었고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말을 많이 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대한 오만은 나이든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문직의 영역에 있는 판사, 검사, 변호사의 경우는 그러한 오만을 더욱 쉽게 가질 수 있다. 가끔씩 터져 나오는 법정에서의 판사의 막말, 검사의 폭압적 언행, 변호사의 이해할 수 없는 비윤리적 행동. 이 모든 것은 경청할 줄 모르는 데서 나오는 비정상적 일탈행동이다.

경청할 줄 아는 사람만이 배려도 가능하다. 배려한다는 것은 남의 입장을 그만큼 헤아린다는 것이다. 경청할 줄 모른다면 배려가 필요한 사정을 헤아릴 수 없고, 배려하여야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곳곳에서 법질서와 도덕률이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도로에서 직진을 위해 정지해 있는 차량이 있으면 나의 우회전을 위하여 당연한 듯이 경적을 울려댄다. 나는 가야 하니 비키라는 것이다. 법률 어디에도 우회전 차량을 위해 비켜 주어야 한다는 법이 없고, 사회생활에 있어 요구되는 도덕과 질서에 비추어도 신호가 바뀔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당연함에도 경적을 울려댄다. 배려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남보다 앞서 나가기 위하여 남을 생각하지 않도록 교육을 받아서이기 때문인가?

법조세계의 치열해진 경쟁은 변호사의 서면에서도 배려를 사라지게 만든다. 근거없는 주장을 넘어 상대방을 향한 인신공격성 내용까지 쉽게 서면에 담긴다. 그렇게 하여야 의뢰인으로부터 능력있는 변호사로 평가받는 것일까? 남의 입장을 듣고 헤아리는 경청과 배려는 기본적인 덕목이 아니라 공허한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한다. 우리는 시간에 쫓기고 시간을 잃어버리고 산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기 위하여 우리에게는 경청이 필요하다. 논리적 사고로 무장한 법률가들에겐 더 더욱 차가운 지식이 아니라 따뜻한 감성에 기초한 경청이 필요하다.

봄 기운에 흐드러지게 피었던 벚꽃이 벌써 어지러이 떨어진다. 벚꽃의 떨어짐을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소리가 들릴까? 떨어질 때를 생각하여 더욱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라는 소리가 들릴까? 먼저 귀 기울여 들어야 벚꽃의 떨어짐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경쟁 속에 살아가는 우리가 서로에게 힘든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하여는 경청과 배려의 덕목을 잊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하여야 한다.

 

이상철 변호사 (법무법인 태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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