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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얼짱 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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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짱 각도란 말이 있다. 45도 오른쪽 위에 렌즈를 놓고 고개를 조금 숙인 채 눈을 살짝 올려 뜨면 실물보다 멋지게, 예쁘게 나온다고 한다.

형사 법정에도 얼짱 각도가 있다. 법대보다 낮은 곳에, 법대와 직각으로 놓여 있는 피고인석 이야기이다. 판사의 눈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피고인의 얼굴은 어지간하면 잘못을 깊이 뉘우치는 선한 인상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재판 내내 그런 줄 알다가 선고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정면에 선 피고인의 얼굴을 바로 보고 아차 싶을 때도 있다. 그대로 선고하기 머뭇거려질 정도여서 선고기일을 연기한 적도 있었다.

10여 년 전에는 법대 정면에 피고인석이 있었다. 변호인석은 지금처럼 법대와 직각인 채로 검사석과 마주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피고인이 재판 중에 변호인의 도움을 받는 데 어려움이 있어 2007년 형사소송법을 개정하면서 피고인의 자리를 변호인 옆으로 옮긴 것이다. 의도는 매우 좋았고 효과도 나름 괜찮은 것 같은데, 재판하기가 영 불편하다. 재판 중에 검사가, 때로는 방청석의 피해자가 피고인의 표정, 자세, 몸짓이나 손짓을 문제 삼는 때가 있다. 가끔은 피고인이 조는 것 같다고 이르는 사람도 있다. 잘 보이는 모양이다. 법정에서 피고인을 가장 잘 보아야 하는 사람은 검사도 방청객도 아닌 판사일 텐데, 모든 순간순간이 중요할 텐데, 흘러간 표정을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고 아쉬울 따름이다.

검사와 피고인, 변호인 자리를 모두 법대 정면으로 옮겨 놓는 방법도 생각해 볼 만 하다. 외국의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스트레스나 공포감 등 감정적인 요인이 동공 크기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상식이다. 맹자처럼 눈동자만 보고 악함을 은폐하려는 사람인지 알아볼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판사들도 ‘동공지진’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궁예처럼 관심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관상을 볼 줄 모르더라도, 얼굴을 바로 보고 이야기 하다 보면 피고인이 진정성 있는 표정을 짓고 있는지 영혼 없는 표정으로 공허한 답변을 하고 있는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다. 출근길, 서울행정법원 앞마당에 있는 ‘바로 서기, 바로 보기’란 작품을 보면서 엉뚱하게도 내일의 형사 법정을 떠올려 본다.

 

한지형 판사 (서울행정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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