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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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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판 내내 그녀의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얼굴은 일그러져 잔뜩 화난 사람처럼 보였다. 말투는 거칠고 어눌하며 조리에 맞지 않았다.

다른 피고인보다 입성이 남루했고 거동마저 불편해 보였다. 누군가 그녀를 지목하자 이웃들은 기다렸다는 듯 평소 그녀가 시어머니를 때리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하였다. 목격자가 넘쳐났다. 그녀는 경찰과 검찰에서 자백하였다. 갈비뼈 13개가 부러져 사경을 헤매는 여든의 시어머니를 방치하여 사망케 한 패륜며느리 역에 이보다 더 완벽한 캐스팅이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은 그녀는 범행을 부인하였고, 공판이 거듭될수록 한결같던 이웃들의 진술이 하나같이 흔들렸다. 편견에 가려졌던 증거들이 부각되었다. 할머니와 엄마를 함께 사랑한 두 딸과 욕심 없고 눈 밝은 변호사가 그녀를 무죄로 이끌었다. 10년 전 사건이지만 오늘처럼 생생하다.

편견은 진영을 만들고, 진영 속에서 강화되어 차별과 혐오를 낳는다. 집단 혐오는 사적 혐오를 정당화하고, 그 집단을 혐오하는 다른 집단을 만들어낸다. 가장 약한 개인과 집단부터 혐오의 대상이 되기 시작하다 결국은 차례차례 조리돌림 당한다.

요즘 혐오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온라인상의 모욕과 명예훼손이 급증하였다. 상대를 벌레에 비유하는 네이밍의 천박함과 잔혹함에는 할 말을 잃게 된다. 혐오나 소수자 보호에 대한 담론은 인류애와 같이 거창한 것이 아니다. 다수자의 지위는 불안정해서 시공과 잣대만 슬쩍 바꿔도 지위가 역전된다. 우리는 모두 소수자다. 흑백 인종분리교육의 부당함을 홀로 지적하며 "Our constitution is color-blind"라고 일갈한 John Marshall Harlan 대법관을 소환할 필요도 없다. 우리 헌법 역시 색맹이고, 모든 차별 앞에 눈멀었다.

무죄가 선고되는 와중에도 그녀는 무표정했다. 전언에 의하면, 공사판을 전전하다 고층에서 떨어져 한쪽 다리를 절고 언어장애마저 겪고 있던, 행색이 초라하고 퉁명스러워 주변 사람 모두가 싫어한, 이웃집 그 여자는 불구가 다 되어 석방되었다. 편견은 막대한 청구서를 잊는 법이 없다.

목격자의 편견이 이럴진대 편견의 주체가 법관이라면 그건 재앙이다. 비난에 귀 막지 말고, 앞만 보고 뛰어가지 말고, 운동장의 기울기도 살피면서, 자꾸 두리번거려야 한다. 그래도 될까 말까다.

 

박주영 부장판사 (대전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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