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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행기

[나의 여행기] 정상훈 변호사, 뉴질랜드 남섬 일주

2만년 전 빙하가 뿜어내는 푸른빛엔 신비로움이…

크라이스트 처치는 대지진 전에는 나름 활기찬 도시였으나 지진 후 그 당시 잃었던 사람들에 대한 슬픔을 극복하고, 건물 잔해를 치우고 새로 짓는데 시간이 좀 걸리고 있다. 도시 한가운데에는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의 벽이 있다. 무심하게 흐르는 강물을 뒤로 하고, 한 아이가 아꼈을 법한 곰돌이 인형도, 싱싱한 꽃과 함께 매년 가족들이 썼을 법한 사랑과 그리움의 쪽지들이 목을 메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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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남섬에 위치한 프란츠 조셉의 빙하 전경. 2만년 전에 내린 눈이 얼어붙어 얼음이 되어 천천히 흘러내리는 빙하는 푸르스름한 빛을 내뿜으며 원시 대자연의 신비 속으로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켄터베리 박물관을 들렸다. 요새 한국에서는 MeToo운동이 한창인데, 특이한건 유년기 Sexual Abuse를 이겨내고 난 “남자”의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보여준다. 그 용기를, 그 사람들이 겪었을 고통을 간접적으로 얼굴과 함께 보고 있으니 충격과 영향이 크다. 그 모든 걸 극복하고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에 마음 깊이 존경을 보낸다.

게스트 하우스 벽면을 가득채운 목수 채용 공고를 보고 있으니 이제 고통을 극복하고 기지개를 펴는 도시의 미래가 보여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다음날은 남섬일주를 하는 인터시티 버스의 첫 구간. 퀸즈타운까지 무려 8시간이 넘게 버스를 타고 간다. 뉴질랜드는 길도 좁고, 수시로 비가 오는 등 날씨도 변화 무쌍하고 심지어 버스기사분들이 달리는 속도를 보니 혼자 온 여행이라 면 렌트보다 버스가 훨씬 나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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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퀸즈타운 호수에 서서히 저녁 낙조가 드리우고 있다. 시리도록 푸른 호수와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맥이 어울려 멋진 풍광을 빚어내고 있다(사진 위). 왼쪽은 호수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정상훈(44·사법연수원 38기) 에이전트 엑스 공동창업자. 아래는 프란츠 조셉 빙하를 구경하러 나서다 만난 비가 개인 뒤 뜬 무지개.

 

 

퀸즈타운에 도착하니 마치 유럽의 호수도시를 보는 듯. 아담한 건물들이 거대하고 긴 호수를 배경으로 예쁘게 서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광장에서는 백파이프 연주도 하고, 서커스도 하고 그럼에도 무질서하지 않다. 노을이 아름답게 지는 장면을 두고두고 즐기며 호수를 한바퀴 돌았다. 


여기에서 가장 유명한 FernBurger 에 들렸다. 퀸즈타운의 명물이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본 한시간씩 줄서는 곳. 오픈하는 시간에 맞춰 10분쯤 전에 도착해서 가장 크다는 Big AL로 시켰다. 마침 토요일 아침이라 퀸즈타운 항구에서는 벼룩시장을 하는데, 현지의 다양한 핸드메이드 제품들을 구경할 수 있다. 백미는 퀸즈타운 가든이다. 호수 앞으로 삐죽 나온 반도처럼 되어 있는데밀포드 사운드를 가지 못한 사람은 사실 이 뷰만 봐도 대체 가능할 정도이다.

해가 진 광장에는 퀸즈타운 개척자 동상이 내려다 보고 있다. 옛날부터 다니던 증기선 Earnslaw는 한밤중까지 가쁜숨을 몰아쉬며 여행객들을 호수로 실어나르고 젊은이들은 흥을 이기지 못한채 즐거운 음악과 전통주를 마시며 퀸즈타운의 밤이 저물어 간다.

남섬여행은 밀포드 사운드를 빼놓을 수가 없다. 피요르드 지형을 보러 가는 크루즈인데, 운이 좋게도 비가 오지 않았다. 물개들 뿐만 아니라 온갖 이름의 폭포들을 구경하며 바다와 이어진 곳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코스. 마지막에는 폭포 샤워 코스도 있으니 땀도 식힐 겸 데크에 올라가 맞는 것도 즐겁다.

하이라이트인 빙하 구경을 위해 프란츠 조셉으로 출발하는데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다. 뉴질랜드 여행 중 처음 보는 비. 도착 10분 정도를 남기고 운전사가 방송을 시작한다. 산이 무너져 도로를 치워야 해서 돌아가야 한다고. 도로 복구가 안되어 전 마을에서 자게 되었다. 다들 이런 일이 여행의 묘미라며 짜증보다는 웃음으로 승화시킨다.

원래 버스 탑승자들이랑 많은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어 친해지지 않았는데 같은 자리에 모여서 몇시간을 있으며 대책회의를 하다보니 서로 돕다가 친해져버렸다. 싱가포르, 일본, 인도, 미국, 독일, 전 세계의 다양한 나이의 사람들이 함께 친구가 되었다. 서로서로 챙겨가며 숙소를 구해 짐을 놓고 다시 나가보니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떠 그동안의 시련을 보상해 준다. 곧 노을이 짙게 깔린다

다음날 다행히 도로가 복구되어 Franz Josef Glacier 에 도착. 빙하를 보러 길을 나섰다. 2시간 넘게 걷다가 지칠무렵 고개에 올라 보는 빙하와의 첫 만남은 마치 첫사랑을 보는 듯한 떨림을 선사한다. 푸르스름한 빛을 내뿜는. 마치 파란 시럽을 덮은 빙수 같은 느낌의 빙하. 2만년전의 그 빛이 가슴을 적신다. 모험의 대단원 처럼 뉴질랜드의 자연의 신비를 온몸으로 느끼며 여행의 마지막을 마무리했다. Kia Ora!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