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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로테크(Law Tech)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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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그동안 선진국을 향한 추격자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중국은 광대한 내수시장과 첨단 IT 기술을 바탕으로 금융, 전자 산업 등에서 새로운 입지를 다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테면 중국은 금융업무에 IT 기술을 활용한 핀테크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루어 냈다. 이에 따라 많은 중국 사람들은 위챗(Wechat), 알리페이 등의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온 오프라인 상품 대금 결제와 개인 간 송금을 손쉽게 처리하는 모바일 금융 서비스의 편리함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처럼 기존 산업이 IT 기술에 의해 새로운 국면을 맞는 모습은 비단 중국의 어느 한 산업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닌 듯하다. 필자는 중국의 법률 서비스 시장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엿볼 수 있었고, 관련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경험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필자는 현재 베이징 대학교에서 중국법 석사(LLM.) 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의 첫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작년 9월 말경에 필자는 학교에서 마련한 견학 일정에 따라 베이징 소재 King& Wood Mellesons(金杜律师事务所, 이하 ‘KWM’이라고 한다)이라는 로펌을 방문하게 되었다. KWM은 2012년에 金杜(진두)라는 중국 로펌과 Mallesons Stephen Jaques 이라는 호주 로펌이 합병하여 만들어진 글로벌 로펌이다. 필자는 견학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그들이 전 세계 주요 국가에 네트워크를 가진 로펌의 일원으로서 중국 내 법률 서비스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KWM의 규모와 명성에 비추어 예상 가능한 전개였다. 

 

그런데 한 청년이 뒤늦게 견학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KWM의 변호사들과 학생들이 있는 회의실로 들어왔다. 그 청년은 평상복 차림에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면서, IT 스타트업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법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역시나 그 청년은 법률 데이터 분석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노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그 청년의 말에 따르면, 인공지능(AI) 기술이 법률 데이터 분석을 위해 활용되고 있고, 데이터 분석 결과는 회사 내부뿐 아니라 외부 기업 고객, 변호사들에게도 독자적으로 서비스되고 있었다. IT 제품에서나 접하던 AI 기술이 변호사의 업무 및 법률 서비스 개발에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놀라움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필자는 KWM을 방문한 지 두 달 후인 11월 말경 元典(위엔디엔)이라는 법률 관련 빅데이터 분석 전문 회사를 견학했다. 우선 이 회사가 소재한 지역은 베이징의 주요 기업들이 몰려 있는 업무지구(商业中心区, Central Business District)가 아니라, 한국의 판교밸리와 같이 IT 스타트업 회사가 집중적으로 입주해 있는 벤처기업 클러스터 단지였다. 이에 따라 이 회사는 첨단 IT 기술 관련 인력과 인프라가 풍부한 곳에서 변호사 등의 법률 전문가를 고용하고, 상호 협업을 통해 고객의 요구에 맞는 법률 데이터 분석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직원의 말에 따르면, 이 회사가 개발한 서비스 중 일부는 현재 상당수의 법원에 제공되고 있다고 한다. 필자는 일단 중국에서 이러한 종류의 비즈니스가 이미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는 점에 고무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 회사의 법률 데이터 분석 서비스는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견학 당일 필자가 볼 수 있었던 이 회사의 서비스는 형사 판결, 특히 처벌수위 예측에 관한 것이었다. 교통사고 가해자가 피고인이 된 사건에서, 담당 직원이 피고인의 자백 여부, 과속 여부 등 사건 정보들을 입력하고 프로그램을 실행하자, 예상되는 처벌(징역 기간, 벌금 등) 내용이 화면에 출력되었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는 별다른 법률지식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결과적으로 누구나 자신의 상황에 따른 정보를 입력하기만 하면, 혐의사실에 대한 처벌 수위를 객관적으로 예측할 수 있었다. 

 

물론 예측 결과만 놓고 보자면, 처벌 수위는 우리나라에서도 양형 기준 등을 통해 상당 부분 예상 가능한 면이 있다. 그러나 이 회사가 개발한 서비스는 입력 변수가 상당히 많아 보다 구체적인 사안에 활용할 수 있어 보였고, 무엇보다 다수의 판결을 분석하여 통계적으로 신뢰할만한 분석 결과를 산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직원의 설명에 따르면, 실제로 매스컴에 보도된 어느 유명 인사의 형사사건 정보를 프로그램에 입력해서 얻은 예상 처벌 수위가 실제 판결의 결과와 거의 유사했다고 한다. 만약 각 사건의 세부적인 정보들이 대량으로 축적되어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예측 서비스들이 개발된다면 법률 지식이 부족한 일반인들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는 법적 판단을 위해 신뢰할만한 근거를 인터넷상에서 클릭 몇 번으로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실 필자가 받은 두 번의 충격은 중국에서의 로테크(Law Tech)가 특별히 높은 수준이어서 라기보다는, 중국이 가지고 있었던 추격자의 이미지에 비해 앞서 말씀드린 KWM과 元典(위엔디엔)의 모습이 의외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비록 필자의 단편적인 경험에 따른 것이지만 중국의 법률 서비스 분야 선두주자들은 추격자의 이미지를 빠르게 지우면서, IT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경쟁력을 갖춰나가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이 글의 의도가 ‘한국이 법률 서비스 시장에서 중국에 뒤처졌다’라는 식의 자극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빅데이터 처리 기술, 딥러닝, AI와 같은 첨단 IT 기술을 활용한 로테크(Law Tech)의 발전은 결국 기존에 축적된 데이터의 양과 질에 의해 결정되는 면이 크다. 그리고 우리나라 법조계는 이미 상당한 판례를 축적하는 등 새로운 법률 서비스를 구현하는데 필요한 양질의 데이터와 관련 경험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이, 지난 수십 년간 축적된 법률 관련 데이터가 IT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법률 서비스를 실현하려는 주인을 만나서 하루빨리 잠에서 깨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박재영 변호사(베이징 대학교 중국법 LLM.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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