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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프리즘

현장(現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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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법정드라마 작가와의 오찬이었다. 작가는 드라마 속 이야기가 실제와 다르다는 사실을 취재를 통해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드라마를 위한 충분한 각색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변호사의 일은 방 안에서 이루어진다. 방의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법전과 법률서적을 뒤져 법리를 찾아내고 웹에서 판례를 검색해서 워드로 서면을 작성하는 일이 내 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법정드라마 속 변호사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실제 변호사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 드라마라면 나도 많이 지루할 것 같다.

작년 4월이었다. 시작은 역시 내 방안에서였다. 한 여성이 남편, 시아버지와 함께 내 방을 찾아와 발을 동동 구르며 눈물을 흘렸다. 세 살 아들이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엄마 품에 안긴 채 의식을 잃었는데 그 모습이 CCTV에 고스란히 찍혀 있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그날 증거보전신청을 했다.

현장검증방식에 의한 증거보전의 재판기일이 그 다음 주로 잡혔다. 재판부에 사전증거인멸의 유인을 호소하며 선행의 현장검증 방식에 의한 증거보전 결정례를 제시했고 쉽게 공감을 얻었다. 고맙고 고마운 일이었다.

그런데 결정문이 미리 송달되어선 안 되었다. 누군들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를 삭제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집행관실에 몇 번이고 전화해서 송달일시를 확인했다. 정해진 송달 시간은 증거보전재판 한 시간 전이었다.

집행관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송달 현장을 지켜본 후 재판 시작 전까지 한 시간 동안 나는 법원명칭이 인쇄된 누런 봉투 안에 든 서류뭉치를 좇아 병원 곳곳을 다녔다. 서류를 따라서 부원장실에 들어가 잠시 앉아 종이컵에 든 차 한 잔을 대접받았지만 마시지 못했고 직원 손에 들려진 봉투를 따라서 방을 나왔다. 부원장은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재판부가 도착할 때까지 십여명의 직원이 상주한 관리사무실 안에서 CCTV영상 원본이 내장된 컴퓨터 앞을 지켰다. 결국 무사히 CCTV영상 사본을 두 개의 USB에 나눠 담아올 수 있었다.

가끔은 방 밖에서 중요한 일들이 이뤄진다. 작가를 다시 만나면 꼭 이 이야기를 들려줘야겠다.

 

홍지혜 변호사 (법무법인 제이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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