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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생활

[나의 문화생활] 뮤지컬 ‘빌리엘리어트’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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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동명영화(2000년)를 엘튼 존의 음악으로 무대화한 작품이다. 스토리는 워낙 유명한 영화 덕분에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1980년대 영국의 광부대파업의 시기에 영국 북부 탄광촌을 배경으로 폐광에 맞서 길고 힘든 파업을 하는 광부노조와 그 속에서 발레리노가 되고 싶은 꿈을 키우는 소년의 이야기이다. 영화로도 참 좋았지만 뮤지컬로는 정말 완벽했다. 


뮤지컬은 1980년대 마가렛 대처 총리가 산업 구조를 재편하고 민영화 중심의 경제 정책을 펴면서 석탄산업을 구조조정하려 하는 상황을 뉴스로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광부들은 이 정책에 거세게 저항하고 파업에 들어가지만 점차 길어지는 파업에 경제적으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런 우울한 시기에 광부인 아버지와 형, 정신이 맑지 않은 할머니와 함께 사는 빌리는 우연한 기회에 발레 수업을 받는다. “졸라 구려요. 이딴 걸 왜 해요.”하면서도 발레를 좋아하게 되는 빌리. 빌리의 재능을 알아 본 윌킨슨 선생에게서 몰래 개인 수업을 받으며 열심히 왕립발레학교 오디션을 준비했지만, 오디션을 보는 날 경찰이 마을을 에워싼 험악한 상황에서 형이 체포되고 결국 오디션을 보러 가지 못한다. 평소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인 빌리가 이 때 만큼은 좌절감에 소리를 지르면서 분노를 표현한다. 광부와 경찰의 험악한 대치 상황 속에서 빌리의 꿈이 목재 판넬과 진압 방패에 이리저리 치이고 부딪혀 부서져 버리고, 뱃속에서부터 토해져 나오는 신음소리와 붉은 조명 아래에서의 격렬한 탭댄스에 빌리의 괴로운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빌리는 이 일로 발레를 접고 포기해버린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행사가 끝난 후 복지회관에 혼자 남은 빌리는 의자를 돌리다 춤을 춘다. 오디션을 보든 못 보든 춤을 추고 싶은 마음까지 없어지지는 않는 것이지. 춤을 추는 어린 빌리 뒤로 발레리노가 된 상상 속의 어른 빌리가 그림자처럼 함께 한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음악에 맞춘 두 빌리의 파드되(pas de deux, 2인무). 빌리는 성인 빌리의 도움으로 하늘로 날아오르기까지 한다. 엉덩이에 매단 와이어 한 줄에 의지해 무대 위를 훨훨 날아다닌다. 몽환적인 분위기의 이 장면은 빌리가 얼마나 발레를 하고 싶어 하는지, 이 아이가 나중에 얼마나 멋진 발레리노가 될 수 있는지를 무대 공간 전체로 그냥 다 보여 준다. 내겐 감히 이 뮤지컬에서 최고인 장면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었다. 이 춤을 보고 빌리의 아버지는 아들의 재능과 꿈을 알게 되고, 아들을 뒷받침해주기 위해 자신의 신념을 버리고 파업 중인 동료들을 배신한 채 일터로 나간다. 광부들은 처음에는 비난하지만 나중에는 빌리의 꿈을 이해해 주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 푼 한 푼 빌리를 위해 돈을 모아 준다. 남자가 왜 하는지 이해도 안 되는 이상한 춤인 발레를 하겠다는 빌리에게 희망을 찾아주려는 탄광촌 이웃들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빌리는 어렵게 런던 발레학교 오디션을 보게 된다.

“빌리, 춤을 출 때 어떤 기분이지?”돌아서는 빌리에게 면접관의 마지막 질문이 떨어졌을 때 곧 나올 답에 대한 기대감으로 성급하게도 벌써 전율이 느껴졌다. “짜릿한 그 느낌, 불꽃 튀듯이 전기가 흘러 자유를 얻는 그 느낌”춤에 대한 열정을'전기(Electricity)'로 표현한 빌리는 절도 있는 동작과 화려한 수 십 바퀴의 턴으로 춤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보여준다. 오디션에 합격하지만 합격 통지서가 온 그 날 광부 총파업은 실패로 막을 내린다. 빌리는 발레리노의 길을 가기 위해 마을을 떠나고 싸움에서 진 광부들은 다시 일터로 돌아간다.

이젠 빌리 보다는 빌리의 엄마, 아빠의 마음이 더 와 닿는 나이가 되어서일까. 돌아가신 엄마의 편지를 읽고 또 읽어 외워버린 빌리의 마음보다 어린 빌리를 두고 눈이 안 감겼을 그 엄마의 마음 때문에 엄마의 편지를 읽는 장면에선 주책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해맑은 탄광 마을의 소년들과 발레 수업을 듣는 소녀들이 그저 사랑스러웠다. 윌킨슨 부인을 찾아가 아들의 오디션비용이 얼마인지 물어보는 빌리 아빠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난무하는 욕설과 자욱한 담배연기에도 불구하고 이제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들 녀석과 함께 보고 싶은 공연이었다. 구성도 촘촘하고 노래와 춤도, 웃음까지도 완벽하고 마지막에 출연자들이 함께 튜튜를 입고 탭댄스를 추는 커튼콜까지도 좋았다. 금세기 최고 뮤지컬이라는 카피는 절대 과장이 아니었다.

 

이윤정 교수 (강원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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