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내가 쓴

[내가 쓴] '누군가 나를 두리번거린다'

140906.jpg

시(詩)에 투항하여 15년의 수사관 생활을 접고 미련 없이 검찰을 떠났다. 야인으로 나선 지 다시 15년, 내 시는 본격적으로 난항 중이다.

2011년「시문학」으로 등단하여 첫 시집을 낸지 5년 만이다. 이번 시집은 ‘하루 사용법’ 등 50편을 4부로 나누어 편집했다.

어떤 이는, 얼룩말의 등 같은 원시의 꿈틀거림을 도시 혹은 변두리 건널목에 새긴 ‘횡단보도’ 시인으로 읽는다. 또 어떤 이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꺼내든 적 없으나 단 한 번도 사랑시가 아니었던 적 없는 사랑의 시라고 읽는다. 또 누군가는, 현실 세계가 내포하고 있는 여러 병리현상을 포착해냄으로써 오래도록 그릇되게 향유해온 관습과 폐습에 대해 자연권과 사회권을 결부시켜 새롭게 접근하고 있다고 읽기도 한다. 생업의 기반인 법무 분야는 좌뇌적 성향으로 수행하는 업무인 반면, 우뇌적 성향인 시문학을 지향하려니 금속성 어휘에 경도된다는 지적을 받곤 한다.

해석을 하는 순간, 그 해석 속에 자신을 밀어 넣거나 해석에 사로잡힐 우려가 있다. 작품이 입을 열면 작가는 입을 닫으라고 했다. 저자로서 책에 대한 설명은 사족이니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련 한다.

발행인 차주일 시인의 추천사를 인용한다. “조재형의 시는 ‘보여주는 감춤’이다. 큰 산이 계절을 주관하는 것도 옹달샘을 감춰놓았기 때문이다. 옹달샘이 감춰둔 풍경을 흘려보내기 때문에 원류와 지류가 생겨난다. 옹달샘의 수면은 인가보다 높고 둥지보다도 높고 정화수보다도 높다. 해발로 계측하지 못하는 발원 앞에 서면, 저절로 눈이 감겨 시말(始末)과 겉과 속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눈을 한 번쯤 뜨게 된다.

그때 우리는 사랑에 대해 할 말이 필요해진다. 옹달샘에서 목소리를 빌리는 날개 접은 날짐승처럼 합장으로만 빌릴 수 있는 말이 있다. 조재형의 시가 그렇다. 이 책은 조재형의 주제적 관점에 대한 아름다운 증거물이다.”

불온한 시대에 태어난 것은 시인에게 행운이다. 지금이 불온한 시대라면 이 시대 시인은 너무 태평하다. 평온한 시대에 태어난 것은 시인에게는 불행이다. 지금이 평온한 시대라면 이 시대 시인은 너무 불온하다. 우리는 불온한 시대를 태평하게 살고 있는지, 평온한 시대를 불온하게 살고 있는지... 모든 재산을 팔아서 시인에게 딸을 시집보내는 건 좋은 일이다. 시인의 딸을 며느리로 얻기 위해서는 모든 재산을 팔아도 좋은 일이다. 우리에게 이런 시인, 이런 부자가 있는가. 명예를 팔아서라도 딸을 부자에게 시집보내려는 사람이 있다. 부자의 딸을 며느리로 얻기 위해 명예를 팔려는 사람이 있다. 왜 우리에게 저런 시인은 안 보이고, 이런 부자는 잘 보이는가.

시집 한 권을 구입하면 한 시인의 단독 정부를 낱돈으로 이양받는 거사이다. 시 없이 견뎌보는 일상 속에서 나는 여전히 시를 찾고 있다. 이것은 지병이다. 가난하게 살다 착하게 떠난 친구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조재형 법무사 (전북회)

미국변호사